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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본보 독자인권위 좌담/언론의 비리의혹 보도

입력 | 2005-08-29 03:07:00

왼쪽부터 이지은 위원, 김일수 위원장, 최현희 유의선 위원. 안철민 기자



《언론의 의혹 제기는 무한정 가능한가. 이에 대해 너무 성급하거나 심지어 무책임한 경우까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동아일보 독자인권위원회는 25일 본사 회의실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언론의 의혹 제기와 인권’을 주제로 토론했다. 독자인권위원들은 “권력층이나 사회지도층의 비리 등에 관한 적극적인 의혹 제기는 언론의 큰 책무 중 하나”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객관적 사실 또는 현장에 대한 보다 엄격한 확인과 검증 노력을 기울여 자칫 당사자의 명예 등 인권이 불필요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확인을 위한 노력은 별로 없이 의혹부터 먼저 제기해 놓고 보는 보도사례가 적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의문, 의심만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지 말고 객관적인 정황과 구체적인 자료, 증언 등으로 기사의 설득력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입니다만….

▽김일수 위원장=현장을 누비면서 치열하게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정신과 독자에게 최대한 진실에 가까운 뉴스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모자란다는 점이 늘 아쉽습니다. 전화로만 간단히 취재한다든가, ‘새로운 것’ 위주로 취재 경쟁을 벌이다 보니 진실과 거리가 있는 소문 등을 앞당겨 거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현장을 발로 뛰면서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려는 노력이야말로 기자의 기본적인 윤리이자 책임 있는 자세라고 믿습니다.

▽유의선 위원=전통 있는 신문에서는 객관적 보도를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엿보이는 반면 포털 뉴스를 보고 있자면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저널리즘 정신의 실종마저 느끼게 됩니다.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다 보니 먼저 목표를 설정해 놓고 의도에 맞게 보도하는 현상이 역력합니다. 한 포털 매체는 최근의 ‘손기정 금메달 분실 논란’과 관련해 ‘육영재단, 이번엔 손기정 금메달 꿀꺽’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더군요. 의혹을 부추기기 위해 작문하듯 보도하는 태도는 과학적 탐구를 중시하는 저널리즘 정신에 어긋납니다.

▽최현희 위원=사회 전반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는 긍정적 측면이 큽니다. 극소수가 아는 의혹 내용은 언론을 통해서만 사회문제화가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의혹 사안을 잘만 다룬다면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겠지요. 이는 언론의 책무입니다. 다만, 책임 있게 보도하고 명예훼손의 여지를 없애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낙종을 걱정해 ‘일단 쓰고 보자’는 관행과 특종 욕심 때문에 ‘잘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한건주의가 팽배한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이지은 위원=시민단체에 있다 보니 기자들의 취재 전화를 많이 받는데, 현장을 발로 뛰면서 정확도를 높이려는 치열한 노력이 잘 안 보여 안타깝습니다. 다만, 목표지향성 보도는 매체마다 나름의 색깔이나 방침이 있으니까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렇더라도 사실 확인에 앞서 정해진 목표와 방향에 따른 기사 배열과 편집기술을 통해 의도된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모습을 보면 화가 납니다.

▽김 위원장=‘손기정 금메달’을 다룬 첫 보도를 보면 한결같이 의혹제기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사실을 확인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미흡해 마치 ‘호박을 익히지도 않고 먹으려는 태도’처럼 느껴졌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산을 넘고 강을 건너서라도 끝까지 추적해 가는 기자정신이 절실합니다. 이와 함께 사실 여부가 의심스러울 때는 당사자의 명예나 인권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책임 있는 언론의 자세일 것입니다.

▽최 위원=동아일보 8월 10일자 ‘손기정 금메달 미스터리’ 기사도 TV가 먼저 의혹을 제기하자 시간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 다급하게 쓴 것 같습니다. 다만 ‘기자의 눈’ 칼럼을 통해 육영재단의 부적절한 대응이나 예산 부족에 따른 전시실 미확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차후의 해결 방안에 대해서까지 언급한 것은 상대적으로 돋보였습니다. 그러나 육영재단 측의 금메달 공개 이후 후속 보도가 없어 해프닝으로 끝난 느낌도 듭니다.

▽유 위원=금메달의 행방을 둘러싼 처음의 의혹 제기가 과연 얼마나 사실에 근거했는지, 충분한 확인과정을 거쳤는지 등을 짚고 싶습니다. 외국의 판례를 보면 전화를 통한 발언은 일반적으로 신뢰나 권위가 있는 답변으로 인정되지 않고, 공식적인 지위에 있는 관계자의 공식적인 답변이라야 사후에 문제가 되더라도 면책사유가 인정되는 추세입니다.

―언론의 성급한 의혹 제기가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 어느 정도면 의혹 제기가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지 그 기준을 제시해 봤으면 합니다.

▽김 위원장=공익(公益)과 사익(私益) 간의 교량(較量) 문제라고 봅니다. 단순한 의혹 제기로 불안을 증폭시켜서는 곤란하겠지만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사안이라면 정보에의 접근이 제한돼 있는 만큼 의혹 제기로 보도를 시작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보다 근본적인 처방은 보도 태도의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이라고 봅니다. 독자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지나치게 앞서가는 예측보도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우리 사회의 불안정성을 절감합니다. 차분하게 ‘한발 기다렸다가 따라가는’ 사후 보도가 바람직할 때도 있습니다. 태풍 지진 전염병 등 안전과 건강에 관해서는 사전 예측보도가 요구되지만 예고된 발표라든지 스포츠 경기 등 단순한 사실의 보도라면 끝난 다음 정확히 보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 위원=동감입니다. 택시를 탔는데 동승자들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부동산 관련 보도로 오히려 혼란스럽다고 하더군요. 듣고 있던 택시운전사가 “언론은 종합대책이 발표되는 날까지 왜 기다리지 못할까요”라고 한마디 덧붙이더군요.

▽이 위원=사후 반론권을 보장한다고 해도 현실적인 문제는 남습니다. 일단 의혹 내용이 보도되면 당사자의 명예는 이미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말거든요.

▽유 위원=의혹 제기에는 사안의 본질이 막중한 공익적 무게를 갖는가 하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 정당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의 정도, 출처의 신뢰도, 정황의 충분성 등이 고려돼야 합니다.

사회=육정수 본보 독자서비스센터장

정리=김종하 기자 1101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