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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이영표 토트넘行 확정까지

입력 | 2005-08-29 03:07:00


“영표를 놔줄 수 없다”, “저를 가게 해 주세요.”

이영표(28)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 이적은 거스 히딩크 PSV 에인트호벤 감독과의 오랜 줄다리기와 신경전 끝에 성사됐다.

에인트호벤은 이번 여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마르크 반 보멜(FC 바르셀로나), 요한 보겔(AC 밀란) 등 미드필더를 대부분 떠나보내 전력공백이 큰 상태. 여기에다 지난 2년간 거의 풀타임으로 왼쪽 윙백 자리를 지켜 온 이영표까지 떠난다면 보통 부담스럽지 않은 상황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부터 이미 이영표의 대체 요원을 물색하기 위해 유럽을 비롯해 한국에까지 후보를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마땅한 왼쪽 요원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이영표 마저 떠난다고 하니 히딩크 감독으로서는 어떻게든지 그를 잡아보려 한 것. 이 와중에 이영표-히딩크 갈등설까지 불거져 나왔다.

당초 이영표와 토트넘 측이 합의한 금액은 200만 유로(약 25억 원) 수준. 그러나 에인트호벤은 이영표를 붙잡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고액의 이적료를 요구해 왔다. 토트넘 측이 마지노선으로 최고 4년 계약에 300만 유로까지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에인트호벤은 400만 유로로 ‘역 제안’을 해 협상은 결렬 직전까지 갔던 것.

이영표 측은 본인의 의지와 이적을 막은 데 따른 구단 이미지 실추 등의 논리로 재차 에인트호벤 설득에 나섰다. 그러자 이번엔 에인트호벤이 네덜란드 리그 최고액 연봉자인 코쿠 다음으로 높은 연봉을 제시했다. 결국 이영표 측은 “앞으로 구단 훈련이나 게임에도 출전하지 않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렸고 에인트호벤 측도 이적 발표 이틀 전에 협조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표는 28일 “일부 언론 보도처럼 히딩크 감독과 안 좋은 감정으로 떠나는 건 절대 아니다. 이적 문제에 관해서도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며 “히딩크 감독의 품을 떠나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런 고민을 감독님이 잘 받아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영표는 29일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메디컬테스트를 거친 뒤 30일경 정식 계약서에 사인할 예정이다.

이로써 한국축구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정상급 프리미어리거를 2명 보유하게 됐다. 최근 일본의 나카타 히데토시가 볼턴 원더러스에 입단하면서 이나모토 준이치(웨스트브로미치)와 함께 2명의 프리미어리거를 보유하고 있지만 소속 구단의 명성에서 한국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프리미어리그서 통하려면▼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아시아 출신 수비수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속설이 존재한다. 파워 넘치고 빠른 축구를 구사하는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란 일종의 편견이다. 그동안 아시아 수비수가 성공한 경우도 거의 없다. 이 점에서 이영표의 프리미어리그 진출은 아시아 축구 역사의 새 장을 여는 것과 같다.

일단 마르틴 욜 토트넘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욜 감독은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이영표의 활약상에 매료됐다. 이영표는 4강전에서 AC 밀란의 오른쪽 윙백 카푸와의 맞대결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등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유럽 정상급 공격수들을 상대로 빠른 발과 강철 체력을 앞세워 PSV 에인트호벤의 탄탄한 수비라인을 구축해 축구전문가들에게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욜 감독은 이영표에 대해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레프트 백”이라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네덜란드보다 한 템포 빠른 축구에 적응해야 하며 감독은 물론 팀 동료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용수(세종대 교수) KBS 해설위원은 “시간이 문제일 뿐 네덜란드에서 보여줬던 것과 같이 성실하게 노력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 또 토트넘에는 에인트호벤보다 뛰어난 선수가 많기 때문에 이영표의 합류로 큰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