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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사지마비 이기고 존스홉킨스 수석전문의 된 이승복씨

입력 | 2005-08-30 03:00:00

기자들의 질문에 조금도 막힘없이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하는 이승복 씨. 그는 “여덟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국어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도 계속 본다”고 말했다. 이종승 기자


“미국인 친구들이 전에는 저를 ‘슈퍼 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슈퍼맨’이라고 불러요.”

‘슈퍼맨 닥터 리’라고 불리는 재미교포 의사 이승복(40) 씨가 2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지마비를 극복하고 미국 의학교육의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대 의대와 존스홉킨스대를 졸업해 촉망 받는 의사가 되기까지의 인간 승리의 과정을 담은 자서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황금나침반)의 출간을 계기로 7년 만에 한국을 찾은 것이다. 그는 “미국 친구들이 ‘승복’이라고 부르기 힘들어 ‘SB’라고 불렀는데 그게 ‘슈퍼 보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여덟 살 때인 1973년 부모와 함께 미국 뉴욕으로 이민한 그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싶어 체조를 택했다”고 말했다. 맹훈련 끝에 1982년 전미 대회에서 종합 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코치가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는 물론 1988년 서울 올림픽에도 한국 대표로 출전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자 한국을 꿈에도 그리던 그는 뛰어오를 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1983년 훈련 중 당한 불의의 사고로 경추 아래 신경이 끊어져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그는 “그러나 (재활 훈련 끝에) 손은 어느 정도 쓰게 됐다. 리포트를 낼 때나 시험을 칠 때 모두 이 손으로 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사고 후 뉴욕대와 컬럼비아대를 거쳐 하버드대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스터디그룹을 함께한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지만 학교로부터는 어떠한 특별대우도 받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4∼5시간 자면 저는 그 3분의 2만 잤어요. 환자들은 휠체어를 탄 저를 처음 보면 흰 가운을 입은 환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 인생의 이야기를 들려 주면 그들은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굳히죠. 그들은 퇴원할 때 ‘당신의 존재가 내게는 소중했어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때 저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는 현재 존스홉킨스대 의대 병원의 재활의학 수석전문의로 일하고 있다. 내년쯤 이 대학의 조교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가 자꾸 장가가래요”라며 수줍게 웃는 그의 모습은 지독한 장애를 이겨 낸 ‘슈퍼맨’의 모습보다는 맑은 영혼을 지닌 순수한 소년에 가까웠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기적을 일군 이승복씨: 1973년 미국 이민 간 체조 꿈나무… 훈련중 사고 당해 평생 휠체어 신세… 하버드 의대 수석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