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한번 다니러온 차들로
골목골목이 빽빽한 좁은 마을 길
무심코 후진하다 호박덩굴을 밟았다
얼른 빠져나가려는데
어린 호박잎과 덩굴손이 함께 이겨져
타이어에 금세 초록 물이 들었다
어쩔 줄 몰라 차에서 내렸는데
짓이겨진 덩굴 건너
노란 등불 환하게
호박꽃 피어 있었다
모르는지 아는지
잘려 싫은 내색도 없이
짓이겨 남겨진 덩굴 건너편
그곳에서
예수처럼
부처처럼
어머니처럼
호박꽃 빙긋이 웃고만 있었다
-시집 ‘붉은 꽃’(문학과 경계사) 중에서
노란 등불 하나 들고 골목길 건너 밤 마실 가던 참이었지. 낡은 바퀴벌레 하나 앞으로 가는 척하더니 울컥, 매운 연기 토하며 후진하더군. 덩굴손을 빼려니 관절이 없더군. 아얏! 비명을 지르려니 입이 없더군. 싫은 내색을 하려니 명색이 꽃이더군. 꽃은 울 수가 없더군. 장 웃던 대로 환하게 웃는 수밖에. 예수도 모르고 부처도 모르지만, 댁네 어머니처럼 후덕하단 뜻인 게군. 정녕 고마우이. 호박순 밟았다고 멈춰선 이 자네가 처음일세. 내 걱정 말고, 내린 김에 호박잎 한 줌 따가시게. 겨드랑 밑에 숨겨놓은 애호박도 두엇 데려가시게.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