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수시로 무너져 내렸고 전선은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쥐와 바퀴벌레가 방안 곳곳에 기어다녔습니다.”
지난달 29일 화재로 7명이 숨진 아파트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아프리카 출신의 한 이민자가 털어놓은 생활상이다. 그는 “한마디로 지옥이었다”며 넌더리를 냈다. 그의 비참했던 생활은 파리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물과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길바닥에서 음식을 만들었다. 식수는 파리 시가 세수용으로 거리 곳곳에 설치해 놓은 수도에서 길어 날랐다. 5층짜리 건물 전체에서 쓸 수 있는 화장실은 단 한 곳. 벽은 계속 갈라졌고 계단은 무너져 내리기 직전이었다.
파리 시민들을 더욱 경악하게 한 것은 이 아파트의 위치였다. 그 동네는 ‘마레 지구’로 불리는 곳. 파리의 전통 건물과 골목 풍경이 온전히 남아 있어 고풍스러운 멋을 좋아하는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다.
화재가 난 아파트는 파리 시민들이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꼽는 보주 광장에서 몇 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동네에 비참한 생활을 하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이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것.
이 아파트는 파리 시 당국이 거주용으로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 건물이었다. 문제는 파리에 이런 건물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점. 시 관계자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건물이 1만∼1만2000개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건물에 사는 주민은 30여만 명.
화재가 나기 불과 나흘 전에도 이주민들이 살던 파리 13구의 낡은 아파트에서 불이 나 17명이 숨졌다. 두 곳 모두 누전 때문에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월에는 시내 중심가 오페라 극장 근처의 한 호텔에서 불이 나 이민자 24명이 목숨을 잃었다. 3건 모두 피해자들은 대부분 아프리카계 이주민이었다.
잇따른 대형 화재에 당국의 주택 정책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좌파 진영은 “제대로 살 곳을 제공하지 않은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도 이번 사고의 공범”이라고 꼬집었다. 여론이 나빠지자 시라크 대통령은 “국적이나 출신이 어떻든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에게 살 만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며 재발 방지를 지시했다.
조선족 불법 이주민들이 사는 집을 둘러본 파리의 한 교민은 열악한 생활상을 이렇게 전했다.
“한 방에 10명 이상이 살고 있었습니다. 밤에는 칼잠을 겨우 잘 정도였어요. 아침에는 이부자리를 걷어내고 그곳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