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게스후?’…色다른 장인과 사위의 좌충우돌▼
2일 개봉되는 로맨틱 코미디 ‘게스 후?(Guess Who?)’는 제목부터 ‘먹고 들어가는’ 영화다. ‘누구∼게?’란 뜻의 얄미운 제목 한 마디에 영화가 노리는 대부분의 재미가 응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스 후’의 약점도 사실은 이 제목에서 비롯된다. ‘그게 누군지’를 알고 난 뒤부터 영화는 맥이 탁 풀려버리기 때문이다.
사업으로 일가를 이룬 중년의 흑인 가장 펄시(버니 맥)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첫째 딸 테레사(조 살다나)가 드디어 결혼할 남자친구를 집에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 청천벽력? 딸이 데려온 남자는 ‘새하얀’ 백인 청년 사이먼(애슈턴 커처)이 아닌가. 흑인 집안의 순수한 혈통을 잇는 게 소원인 펄시는 딸과 사이먼을 갈라놓기 위해 별의별 훼방작전을 동원한다.
중반까지 영화는 내용과 설득력을 더불어 갖춘 웃음을 준다. 아버지가 택시에서 내린 사이먼 대신 흑인 택시 운전사를 사윗감으로 헷갈려 하는 대목은 작위적이지만 일리가 있고, 딸과 사이먼을 떼어놓기 위해 사이먼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심지어 침대에서까지) 아버지의 ‘애틋한’ 모습도 비현실적이지만 절실한 감이 있다. 할리우드의 샛별 애슈턴 커처의 예쁘장(?)하고 풋풋한 매력과 ‘오션스 일레븐’ ‘미녀 삼총사 2’에 출연했던 코미디언 출신 버니 맥의 ‘아줌마스러운’ 표정과 입놀림도 일품이다.
하지만, 원수지간으로 변한 예비 장인과 사위가 우여곡절 끝에 화해하고 청춘 남녀는 결혼에 골인한다는 결말을 예상 못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관객이 원하고 즐기고 싶은 건 바로 그 ‘우여곡절’인 것을….
이 영화는 ‘흑인 장인과 백인 사위의 만남’이라는 ‘큰’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펼치고 이끌어 갈 ‘작은’ 아이디어들이 달린다. 후반으로 갈수록 드라마틱한 사건의 절대 숫자가 부족한 이 영화는 펄시와 사이먼이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마저 두 남자의 탱고 춤으로 어정쩡하게 봉합해 버린다. 뭔가 웃기고 감동적이기는 한데 딱히 어느 대목에서 콕 집어서 웃고 감동해야 할지 아리송한 것도 풍부한 ‘상황’이 없이 ‘말발’에만 기대는 이 영화가 숙명적으로 다다를 종착역이다.
‘우리 동네 이발소엔 무슨 일이’를 연출한 케빈 로드니 설리번 감독. 12세 이상.
▼‘불량공주 모모코’…엽기발랄 소녀의 유쾌한 성장痛▼
사진 제공 젊은기회
영화 ‘불량공주 모모코’(이하 ‘모모코’)를 보는 건 정신 사나운 일이지만 동시에 아주 특별한 경험임에 틀림없다. 변화무쌍한 각종 상상력을 마치 생중계하듯 영상으로 옮겨다 놓았으니 말이다. 생각의 속도로 수다(내레이션)를 떨고, 수다의 속도로 영상을 보여주는 희한한 영화다.
치렁치렁 레이스가 달린 공주 옷만 입고 다니는 소녀 모모코(후카다 교코). 친구 하나 없는 그녀는 우아한 드레스만 입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 그런 모모코에게 위기가 닥친다. ‘짝퉁’ 베르사체를 팔던 건달 아빠가 보스의 명령 때문에 더는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것. 모모코는 아빠가 팔다 만 ‘짝퉁’을 마저 팔기 위해 지역정보지에 광고를 낸다. 광고를 보고 첫 손님이 도착하는데, 이 소녀가 또 가관이다. 수준급의 침 뱉기와 박치기를 구사하며 이상야릇한 특공무술복을 입은 스쿠터 폭주족 이치코(쓰치야 안나)였던 것이다.
‘모모코’는 만화적 감수성의 절정이다. 모모코가 사는 마을은 트레이닝복 천국이고, 건들거리는 정체불명의 ‘쫄바지’ 청년은 족히 50cm는 될 법한 앞머리를 앞으로 쭉 ‘발기’시킨 채 돌아다니며, 만취한 여성은 전광석화 같은 일직선 구토를 ‘발사’하고, 아름다운 여자를 본 남자의 국부에선 천둥 번개가 일어나니 말이다. 표정과 제스처는 차고 넘치는데,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캐릭터라곤 단 한 명도 없다(단, 이들은 하나같이 낙천적이다).
대사는 한술 더 뜬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어린 시절의 모모코는 이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엄마를 이렇게 ‘독려’한다. “한 여자가 행복을 쟁취할 절호의 기회예요. 빨리 이혼하고 성형수술도 하고 가슴수술도 하고 이젠 피부미용에 신경 써요.”
가짜, 유치함, 촌티, ‘짝퉁’의 총집합(심지어 영화 ‘킬빌’의 ‘짝퉁’ 장면도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잡동사니들에 배꼽을 잡고 웃다보면 불현듯 진심 비슷한 게 가슴을 쓱 스쳐 지나간다. 따돌림 당하며 살던 모모코와 이치코는 서로를 통해 빈곳을 채워 나가고, 모모코는 가장 동경하고 애타게 찾던 위대한 누군가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 당했다. 싸구려 같던 이 영화가 알고 보니 사랑과 성장이라는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진주처럼 품고 있었다니.
똑똑한 척하면 꼴도 보기 싫고 불량한 척하면 품어주고 싶은 건 남자나 영화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CF 출신인 나카지마 데쓰야 감독. 2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