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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 몸 이야기]관악기 연주자 “내 입술을 돌려줘”

입력 | 2005-09-03 03:04:00

오보에 연주를 위해서는 입술을 거의 안 보일 만큼 완전히 말아넣어야 하기 때문에 ‘얇은 입술’이 유리하다. 사진 제공 서울시향


관악기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몸 부위는 ‘입술’.

악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입술은 모양의 변화나 호흡의 강약, 또는 미세한 떨림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낸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입술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만만찮다.

“오보에는 입술을 입에 말아 넣다시피 하고 불어야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오보에가 닿는 아랫입술 부분의 입술선이 거의 지워져버렸다. 아랫입술선이 없어지는 건 대부분의 오보이스트들이 겪는 일이다.”(서울시립교향악단 오보이스트 이미성 씨·사진)

입술 모양이 변하는 경우도 있다.

“플루트의 경우 아랫입술에 걸치듯 하며 연주하기 때문에 플루티스트들의 아랫입술은 ‘밖으로 뒤집어진 듯한’ 모양이 되거나 좀 더 도톰해지기도 한다.”(플루티스트 윤혜리 씨)

반면 트럼페터들은 아랫입술보다 윗입술이 고통 받는다.

“트럼펫을 불다 보면 입술이 눌려서 일종의 굳은살이 생긴다. 특히 윗입술 가운데 부분에 생기는 경우가 흔한데 없어지지 않는다.”(서울시향 트럼페터 이영환 씨)

관악기 연주자에게 최악의 계절은 겨울. 찬바람에 트거나 건조해 갈라진 입술은 연주에 치명적이다. 때문에 남자 연주자도 수시로 보습제나 꿀을 발라 입술을 보호한다.

관악기 연주자에게 ‘이상적인 입술’은 어떤 것일까? 요즘은 앤젤리나 졸리의 입술처럼 도톰한 입술을 ‘섹시하다’며 선호하는 추세지만, 관악기 연주자의 입술은 얇을수록 좋다.

클라리네티스트 이범진 씨는 “입술이 좀 두툼한 편인데 처음 클라리넷을 할 때 선생님에게 ‘너는 입술이 두꺼워서 소리 낼 때 힘들겠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며 “입술이 얇으면 아무래도 촉각이 더 예민하고 입술을 오므리거나 안으로 말아 넣을 때 유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입술과 혀를 섬세하게 놀려야 하는 관악기 연주자에겐 종종 ‘키스’와 관련된 농담이나 속설도 따라다닌다. 대표적인 것이 “오보이스트(또는 플루티스트)가 키스를 제일 잘한다”는 말. 사실일까? 이에 대해 연주가들은 “우스갯소리지만, 완전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오보에 전공 학생들은 흔히 듣는 이야기다. 아마 오보에가 목관 악기 중에서 입술 근육을 가장 많이 사용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 같다.”(이미성 씨)

“‘텅잉(Tonguing·악기 소리를 내기 위한 혀 사용법)’ 때문인 것 같다. 플루트는 다른 악기보다 혀의 놀림이 자유롭다. 또 입을 다물고 텅잉을 하는 오보에와 달리 플루트는 입을 약간 벌린 상태에서 텅잉을 하는데 그래서가 아닐까?”(윤혜리 씨)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