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파키스탄인 남편을 둔 한국 부인들과 상담을 했다. 전철을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이 상담하는 시간하고 맞먹었지만 언젠가 결심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관점에서 마초 감독들에게 비평의 화살을 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말 여성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여성을 위해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결심했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 내고 싶었다.
모두 일하는 엄마인 그들에게 주5일제 근무란 꿈같은 이야기이다. 대부분 중소기업체에 근무하는 그들은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하기 때문에 토요일 오후 외에는 상담 시간을 내지 못한다. 게다가 지난번 1차 상담했을 때와는 달리 요번에는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돌도 안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이를 업은 채, 서서라도 그들은 상담을 받고 싶어 한다.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나도 궁금한 게 있었다. 왜 파키스탄인과 결혼했을까? 이슬람교도인 남편들은 돼지고기는커녕 라면 수프 안에 있는 돼지고기 분말조차 못 먹게 한단다. 유교의 잔재가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이슬람 남자를 사랑하게 된 그들에게 ‘대체 왜?’라고 물어보았다. 모두들 빙그레 웃는다. 정말 사랑받는 느낌이라고. 아직도 대가족 제도를 소중히 하고 술도 담배도 멀리하며 사는 ‘성실한 인간’을 그들은 본 듯했다.
그러나 파키스탄인과 결혼하든 한국 남편과 살든 개수대의 머리카락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들도 치약은 어디부터 짤까, 걸레질은 누가 할까, 아이를 누가 볼까 등의 문제로 남편과 다툰다. 문화차라고 생각했던 결혼 생활에 성격차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시간문제이고. 파키스탄인 남편을 대신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과거를 이야기할 땐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제결혼의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바로 한국인 내부의 시선이라고. 남편과 함께 길을 가면 욕을 하는 사람들. 시비를 거는 남자들. 이슬람 남자들은 권위주의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정력이 좋을 것이라는 편견에, 10년을 함께 살았는데도 사기 결혼 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그들.
그렇게 눈물과 하소연, 한바탕 웃음이 뒤범벅된 시간을 뒤로하고, 텅텅 빈 토요일 밤,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은 너무 멀고, 어깨는 아파 오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안다. 이주 노동자 가정의 문제는 다문화 사회를 겪어야 할 우리에게는 필연의 문제다.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굴복하지 않는 법을, 조정하고 타협하고 설득해서, 이 땅에서 떠나지 않고 ‘살아남는 법’을.
그러나 이 ‘또 다른 가족’을 바라보는 편견과 시선의 문제는 상담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닐 터. 그저 더 소수의 우리일 뿐인 그들과 남편들을 위해 글을 써야겠다. 행동해야겠다.
심영섭 임상심리학박사·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