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서울 강남 부동산에 대해 세금폭탄을 예고했을 때 이 지역 사람들은 “2년 반만 참으면 된다”는 농담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또 참여정부의 미숙한 부동산 정책으로 집값이 크게 올랐을 때 “알고 보니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편이었다”고 조롱하지도 말았어야 했다. 김병준 대통령정책실장이 “헌법 정도로 바꾸기 어려운 (부동산) 제도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바로 그때쯤이다. 그리고 마침내 경제부처는 지난주 청와대 인사들의 그런 결연한 의지를 담아 ‘부동(不動)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았다.
다 알려진 대로 그 골자는 ‘강남에서 혹독하게 거둔 세금을 지방에 나눠줌으로써 정권이 바뀌더라도 수혜자들이 이 제도를 지키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이 정책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 임기가 법에 정해져 있는 이상, 정권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 기간에만 국정을 성실히 운영하면 된다. 임기 중에 자꾸 못하겠다, 내놓겠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반대로 임기 후의 정책을 지금 못 박아 놓는 것 역시 상식을 벗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정책이란 시장 상황에 대해 선행적이면서 아울러 증세에 대처하는 대증요법적이어야 한다. 다음 정권에서 시장상황이 변했는데도 운 나쁜 그 정부가 속수무책으로 전 정권의 독선이나 원망하고 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인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불변인 정책이 되려면 그야말로 완벽해야 하는데 이 정책이 그러한가. 벌써 경제 부처 관료들은 정책의 허점을 걱정하며 “지혜는 부족하고 소신만 강한 사람들의 주장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수군대고 있다.
수혜자들을 이용해 정책을 지키도록 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문제다. 인구의 95%를 이해당사자로 만들어 그 압력으로 5%에게 무거운 세금 부담을 유지토록 한다는 것은 포퓰리즘의 또 하나 나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발상이 발전하면 예컨대 우리 국민 가운데 현금자산 보유 상위 5%, 주식 보유 상위 5%, 고가 골프장 회원권 보유 상위 5%의 사람들한테 매년 부유세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 나머지 95%에게 나눠주자는 주장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소수 부유층의 것을 다수의 서민에게 골고루 베푼다는 것은 아름답게 들린다. 얼마나 현혹적인가. 그러나 그런 정책이 결과적으로 다수의 서민을 비참하게 만든 사실을 우리는 공산주의의 실패에서 똑똑히 보아 왔다. 정책은 다수의 힘보다 합리성에 의해 지켜지도록 하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이 정책이 나오게 된 동기와 과정이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것도 가볍게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공직자는 일반 시민이나 시민단체보다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 가령 시위하는 군중이 과격한 언사를 쓰고 격렬한 행동을 한다고 이를 막는 경찰이 똑같이 흥분해 욕설을 퍼붓거나, 화가 난다고 맞붙어 격투를 벌여서야 되겠는가. 비판이나 조롱이 기분 나쁘다고 정부가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경찰이 제복 벗어던지고 시위대와 주먹다짐하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어찌 보면 독선, 포퓰리즘, 사회주의적 성향, 그리고 운동권 시절의 감정적 기질 등 여론으로부터 가장 자주 비판받고 있는 현 정권 인사들의 특성들이 이 사안 하나에 집약돼 있는 듯하다.
부동산 정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여러 분야에서 우리 사회는 이상하게 변했는데 그 달라진 모습이 다음 정권의 선택에 의해 바로잡아지기 상당히 어렵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 더 걱정이다. 지금 정부 주변의 임기 직 가운데 상당수는 특정 코드의 인사들로 채워지고 있다. 정부가 임면권을 행사하거나 또는 선발에 영향을 주는 자리의 많은 수는 다음 정권 후반기에나 임기가 끝나도록 되어 있다. 앞으로 이 정권 중 바뀌는 9명의 대법관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것은 이 정부가 추구하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가 차기 정부에서도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나마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없어지면 우리는 지금 무슨 기대를 갖고 살 것인가. “군대생활 하는 셈 치고 2년 반만 참는다고 하다간 직업군인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청와대 한 인사의 ‘악담’이 정권 후반기를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국민을 ‘낙담’시키고 있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