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면 ‘말과 사물’은 철학 서가에 꽂혀 있다. 이 분류는 옳지 않아 보인다. 이 책에서 파고드는 분야는 미술, 생물학, 경제학, 언어학 등을 망라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분류는 또 옳다. 이 책은 이를 통해 우리 사고 형성의 근본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분류와 질서 자체에 대해 묻는다.
책은 서문부터 도발적이다. 중국의 어느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동물 분류방식을 인용한다. 황제에게 속한 것, 미라화한 것, 길들인 것, 젖 빠는 돼지, 주인 없는 개, 광폭한 것, 셀 수 없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포유류, 조류, 파충류 등의 체계를 단 하나의 진리로 가르치고 배워 온 우리를 잠시 포복절도하게 할 내용이다. 이 분류의 인용을 시작으로 저자는 우리가 만들어 온 인식체계의 근원을 흔든다. 말로 구축한 세계의 실상과 허상을 허물어 나간다.
여러 분야를 섭렵하며 저술된 책은 의외로 많다. 그러나 다양한 분야에 전문가적 지식을 쌓고 이들을 통섭의 수준으로 서술한 책은 많지 않다. 그리고 각 분야의 근간을 이처럼 자신 있게 들춰내며 지식의 배치와 질서를 파헤쳐 던져 놓은 책은 거의 없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의 독보적인 가치다.
이 책을 읽는 것은 가시밭길을 맨발로 걷는 것처럼 고난스럽다. 저자는 독자의 이해를 요청하지 않는다. 뻔뻔스러울 만큼 마음대로 자신이 필요한 개념과 단어를 풀어놓는다. 번역문은 그런 만큼 더 뻑뻑하고 버겁다.
그러나 쉽게 읽히지 않는 문장 너머 곳곳에 드러나는 저자의 지적 통찰력은 가히 압도적이다. 그가 바라보는 화폐의 유통은 보통명사가 다양한 사물을 표상하고, 여러 개체가 종과 속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사실과 다른 맥락이 아니다. 18세기 이전 모든 품사는 명사의 지배하에 있었고 모든 동사는 존재한다는 의미로 환원될 수 있었다. 그에게 시간과 공간은 서로 다른 사건이 아니고 병치되어야 하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지식의 고고학을 통해 그가 발굴해내는 것은 인간이다. 그의 발굴에 의하면 인간이라는 개념은 유럽에서 겨우 200여 년 전에 창조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인문과학은 그 인간의 개념을 인식하는 방법일 뿐이다. 그리고 그 인식의 종말이 지금 다가오고 있다.
‘말과 사물’을 포함해 푸코의 저작은 지적인 폭탄들이었다. 이성에 대한 우리의 절대신뢰가 의심받기 시작했다. 그러기에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서도 푸코는 유행병처럼 번졌다. 푸코를 아느냐고 물었다. 지금도 번역되어 서점의 서가에 새로 꽂히는 철학 서적은 대개 카를 마르크스와 푸코의 교집합이거나 합집합 어딘가에 있다. 감옥이 중요한 건물형식으로 주목받고 분석되기 시작한 건축계의 움직임도 모두 그의 영향을 보여 주는 일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푸코를 아는 것이 아니다. 푸코를 통해 우리가 우리를 아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금을 긋는 인문계 자연계의 분류는 젖 빠는 돼지, 주인 없는 개의 분류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것이다. 강요된 텍스트의 허무맹랑한 억압이 유령처럼 우리 사회에 떠돌아다니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