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을 움직이던 한 인물이 타계했다는 소식이다. 뉴올리언스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복구 작업 소식만큼 비중 있는 언론 보도가 이어진다. 연방대법원장 재직 중에 80세로 세상을 하직한 윌리엄 렌퀴스트, 그는 미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법 거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뒤에는 연방대법원이 있다. 일찍이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토크빌이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1896)에서 경탄한 그대로다. 무릇 미국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은 조만간에 법원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그리고 법원이 내린 판단은 최종의 규범이 된다. 미국의 거대한 정치사회적 침로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개표 과정과 최종 결과를. 박빙의 플로리다 주의 개표를 두고 한 달 이상 법정 공방을 거듭하던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재검표는 중지되고 부시의 승리가 선언됐다. 고어 진영은 즉시 승복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미국 사회에서 영원히 매장되었을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국민이 용납할 리 없으니….
미 대법원은 실무법원이 아니라 정책법원이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이 미칠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스스로 다룰 사건을 선택한다. 연방판사는 종신재직권이 보장된다.
그러므로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을 대법원에 임명하고자 각별한 노력을 쏟는다. 대통령은 8년 이상 재직할 수 없지만 자신이 임명한 판사들을 통해 ‘집권을 사실상 연장’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임명동의권을 가진 상원도 후보자의 사법철학에 민감하다.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 의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그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1986년 퇴진한 워런 버거의 뒤를 이어 대법원장에 취임했다. 200여 년의 미 대법원 역사상 현직 대법원 판사가 대법원장으로 승진한 예는 흔치 않다. 대법원장에게 주어진 특권을 고려할 때 동료 대법원 판사 중에서 대법원장이 나오면 지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런 전통을 어기면서까지 굳이 렌퀴스트를 원장에 임명한 것은 그만큼 그의 인간성이 원만하고 지적 능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흔히 평가되듯이 렌퀴스트는 보수사법의 거장이었다. 1960년대 버거 대법원장이 인류평등주의의 기치 아래 거세게 일으켰던 진보사법의 격랑은 렌퀴스트의 취임 이후 서서히 잠재워졌다. 버거 대법원장이 뜨거운 가슴으로 판결을 내렸다면 렌퀴스트는 차가운 머리로 선행 판결들을 약화시켰다.
대법원의 사건은 대략 4가지 범주로 요약할 수 있다. 연방정부 대 주정부, 사법적극주의 대 사법자제론, 개인의 기본권 대 국가권력의 적정한 수행, 그리고 소수자 대 평균인 사이의 대립이다. 흔히 전자들을 옹호하는 판사를 진보로, 후자에 비중을 두는 판사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한다. 역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 판사 내정자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대법원장 내정자로 전격 지명됐다. 그가 어떤 지도자로 성장할지, 앞으로 미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미지수다.
어쨌든 세기의 천재 렌퀴스트의 위업은 오래 기억될 것이다. 그가 회복 불능의 암을 앓으면서도 마지막까지 사임하지 않은 고집을 부린 것은 ‘부시 대통령의 짐을 덜어 주려는 배려’라는 해석도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이형기 시인의 시 구절이 역설로 들린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정작 떠날 마음도 없으면서도 떠난다는 말만 하는 경우는 어떤가?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서둘러 보고 싶은 국민이 늘어나는 것 같아 우울하기만 하다.
안경환 서울대 교수·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