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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동관]‘김삿갓 북한 방랑기’

입력 | 2005-09-07 03:04:00


“땅덩어리 변함없되 허리는 동강나고…어찌타 북녘 땅은 핏빛으로 물들었나.”

1964년 4월부터 30년 동안 매일 낮 12시 55분부터 5분간 KBS 제1라디오 전파를 탔던 ‘김삿갓 북한 방랑기’는 라디오시대의 대표적 반공 드라마였다. ‘눈물 젖은 두만강’ 곡조를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한 이 드라마는 북한 지도부의 비정(秕政)을 질책하고 주민들의 참상을 안타까워하는 ‘삿갓 어른’의 활약상을 전했다. 남쪽 학생들이 ‘군관 동무’ 말투까지 흉내 내는 등 드라마가 성공을 거두자 북한은 1966년 대응 프로그램으로 ‘홍길동 남조선 방랑기’를 만들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중앙정보부가 대북 심리전 차원에서 기획했다. 북한 정보가 부족했던 만큼 체포 간첩이나 자진 월남(越南)한 인사들의 증언을 활용했다고 한다. 1994년 4월 KBS 사회교육방송 심야시간대로 옮겨져 명맥을 잇던 이 드라마는 남북정상회담 1년 뒤인 2001년 4월 중단됐다. 냉전(冷戰) 해체와 남북 화해 진전의 결과였다.

▷‘김삿갓 북한 방랑기’의 작가였던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은 최근 3박 4일간 평양을 다녀와 “북한 사람들의 당당하고 밝은 표정과 유연한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북한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으로 그렸던 것이 몹시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보부가 자료를 직접 공급했고, 20분 분량의 드라마 원고료를 회당 1500원씩 받던 시절에 5분짜리인데도 그 두 배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평양은 북한 내에서도 성분이 좋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만 거주하는 ‘특수지역’이다. 대부분 훈련 받은 요원들이 남쪽 사람들을 상대한다. ‘꽃제비’ 출신 탈북소년 변종혁(18) 군이 ‘솔’이란 필명으로 청소년직업센터 홈페이지에 올린 18편의 글에는 북한 구호소에서 굶주림 끝에 죽어 나가는 수용자들의 갖가지 참상이 생생히 기록돼 있다. 북한은 아직은 ‘살 만한 세상’이 아니다. 잠깐 평양을 둘러본 인상으로 북한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친 졸속이요 편견적 감상일 뿐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