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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내 머릿속의 명장면 베스트8

입력 | 2005-09-08 03:03:00


《때론 영화 속 단 하나의 이미지가 그 영화를 평생 잊지 못하고 사모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기자가 최근에 본 수백 편의 영화들 중에서 머릿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아 있는 이미지 8개를 꼽아보았다(무순).》

①'씬 시티'=신부에 의해 사육된 냉혈의 킬러 케빈(일라이저 우드·오른쪽)이 결국 무지막지한 거리의 파이터 마브(미키 루크·왼쪽)에게 붙잡혀 사지를 잘리고 늑대에게 먹힌다. 영화는 윤곽만 남기는 실루엣 처리를 통해 '덜 보여주는 게 더 보여주는 것'이라는 이미지의 진실을 설파한다.

②'영 아담'=방랑자 조(이완 맥그리거)가 유부녀 엘라(틸다 스윈튼)와 거친 섹스를 나눈 직후 드러내는 무표정한 성기. 이 세상에서 가장 피로하고 권태로운 성기다.

③'피와 뼈'='괴물'로 불리는 남자 김준평(기타노 다케시·위쪽)이 아들과 '수컷 대 수컷'으로 주먹질을 벌이는 순간. 인간은 동물인가 아닌가, 이런 걸 고민하게 만드는 슬픈 이전투구.

④'2046'=이상향인 2046을 향해 가는 기차 안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슬픔을 담은 건조한 표정으로 창 밖을 쳐다보는 안드로이드(왕페이·王靖雯). 그녀(혹은 그것)는 사랑을 알까, 모를까. 아, 현존하는 여배우 중 가장 새침한 왕페이의 코끝, 깨물고 싶다.

⑤'쿵푸 허슬'=소심한 건달 싱(저우싱츠·周星馳)이 드디어 무도(武道)를 깨우쳐 전설의 무공 '여래신장'을 구사한다.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가 마침 지나가는 독수리의 '등'을 사뿐히 지려 밟고 다시금 솟구쳐 오른다. 기절초풍할 중국식 허장성세의 진면목.

⑥'밀리언 달러 베이비'=전신이 마비된 매기(힐러리 스웡크)를 제 손으로 안락사 시킨 후 병원 문을 쓸쓸히 걸어 나가는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뒷모습. 빛과 암흑의 이미지가 종교적이기까지 하다.

⑦'몽상가들'=프랑스인 쌍둥이 남매 이자벨(위쪽)과 테오(왼쪽)가 미국인 친구 매튜와 함께 알몸이 되어 '환상의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순간. 섹스, 근친상간, 부끄러움…, 이런 개념화된 단어를 벗어나 원초적 자유로 돌아간 인간의 모습. 이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삼각형이 있을까.

⑧'바람의 전설'=포스터에서 춤추고 있는 연화(박솔미)가 신은 그물스타킹의 이미지. 난수표 같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고탄력 스타킹의 결이 복잡한 심경을 불러일으킨다.

*이미지 우측 상단의 분류등급은 기자가 주관적으로 관람가능한 나이를 판단한 것임.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