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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형사’냐 ‘외출’이냐… 8일 동시개봉

입력 | 2005-09-08 03:03:00


《많은 영화팬이 기다려 온 이명세(48) 감독의 액션멜로 ‘형사-Duelist’(사진 위)와 허진호(42) 감독의 멜로 ‘외출’이 8일 동시에 개봉된다. 전자는 조선시대, 후자는 현대를 배경으로 한 애절한 사랑 이야기다. 각기 독창적인 작품세계로 인정받는 두 감독의 신작을 소개한다.》

▼스크린 위에 꾹꾹 눌러쓴 칼의 노래 ‘형사-Duelist’▼

이명세 감독은 자신의 신작 ‘형사-Duelist’에서 한동안 가슴속에만 품어야 했던 온갖 이미지를 원 없이 풀어놓은 듯하다. 1999년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수없이 구상했음직한 현란한 영상들이 스크린 밖까지 터져 나올 듯이 넘쳐흐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서로 적으로 만나 이룰 수 없는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여형사 남순(하지원)과 자객 ‘슬픈 눈’(강동원)의 대결이 펼쳐진다. 무대는 조선시대지만 사극의 고리타분함은 떨쳐버렸다. 인공적인 형식미와 풍부한 색감을 바탕으로 한 탐미적인 비주얼, 허공에서 춤을 추는 듯한 화려한 무술, 판타지와 현실이 교차하는 몽환적 이미지가 시종 일관 눈을 사로잡는다.

장터에서 사람들이 가짜 돈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는 첫 장면. 마치 역동적인 럭비 게임을 보는 듯 생동감과 속도감이 넘친다. 남순과 ‘슬픈 눈’의 첫 대결과 함박눈 아래서 펼쳐지는 마지막 대결의 배경인 돌담길 장면. 둘의 칼싸움은 지독하게 고혹적인 정사(情事)같이 그려진다. 돌담길에서 불현듯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그림자들은 실사 영화인데도 마치 애니메이션 같은 정교함을 보여 준다.

빛과 어둠의 조화로운 결합, 원색의 천이 휘늘어진 장터 거리와 구성적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계단 세트 등은 ‘시각적 예인’이라는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치밀한 스타일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럼에도 시사회를 거치는 동안 평가는 크게 엇갈리고 있다. ‘멋스러운 화면 연출만으로도 한국 영화사에 남을 영화’라는 찬사부터 ‘알맹이 없이 이미지만 예쁜 뮤직비디오 같다’는 시비까지 그 간격이 꽤 멀다. 영화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이면 나름대로 이렇게 저렇게 해석해보고, 살을 붙일 만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담고 있다는 얘기도 된다.

상황 설명이나 대사를 줄이고 눈빛과 표정, 몸의 움직임으로 감정의 떨림과 변화를 표현하려는 감독의 시도는 절반의 성공 같다. ‘영화는 소설이 아니라 시’라는 감독의 취향과 개성에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관객들에겐 별 문제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몇 가지 힌트만으로 드라마의 가는 가닥을 따라잡기가 벅차고 때로 혼란스럽다.

‘형사-Duelist’는 이명세 감독의 스타일을 최대한 확장하고 증명한, 감독 자신에게 가장 충실한 영화로 읽힌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중을 의식하지 않고 뭔가 개인적인 것을 시도했는데, 사람들이 그 생각에 공감을 표시할 때 행복하다.”

이 감독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진짜로 좋은 것은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가 대중과의 타협이 아니라, 자기 방식대로 사람들과 진정 소통할 수 있을까.

그는 보여 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이를 대중이 얼마만큼 수용할 수 있을지는 그의 손을 떠났다. 12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돌을 던질 수 없는 사랑의 노래 ‘외출’▼

허진호는 ‘망설임’의 감독이다. 만날까 말까, 잘까 말까, 화낼까 말까, 울까 말까, 이별할까 말까…. 이런 작은 망설임이 모이고 모여 마음에 큰 소용돌이를 남기는 게 허진호 영화였다. 남녀의 섹스 혹은 결혼으로 이런 망설임이 막을 내리는 여느 멜로영화와 달리 허진호의 멜로 속 남녀는 어떤 신체적, 법적 단계에 이르렀든지 간에 주문을 외듯 끊임없이 주저한다. 이런 안타까운 정서가 허름한 사진관이나 한옥이라는 공간적 매력과 만나서 관객의 마음을 훔쳤다. ‘8월의 크리스마스’나 ‘봄날은 간다’에서 보듯 시기나 계절을 적시하는 단어를 자신의 영화 제목에 약속처럼 넣었다는 점은, 아름다운 시절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하는 애틋함을 허 감독이 자신의 감성적 화두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하지만 ‘외출’은 ‘4월’이란 단어를 영어제목(‘April Snow’)에 집어넣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허진호 표’ 멜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랑은 혼란과 고민을 가장했지만 어디까지나 단도직입적이고, 만남과 헤어짐은 공식적이다. ‘무관심한 척 바라보기’가 전매특허인 허진호의 카메라는 이번엔 배용준의 배에 새겨진 왕(王)자까지 훑어낼 정도로 가깝게 다가가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인물의 속내는 알 수가 없이 멀어지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한번 제대로 ‘외출’해 본 건 다름 아닌 허 감독 자신 같다.

무대조명가 인수(배용준)와 가정주부 서영(손예진)은 배우자들이 자동차 사고로 혼수상태라는 소식을 듣고 속초의 한 병원으로 달려간다. 사고 처리 과정에서 인수와 서영은 그들의 배우자들이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병원 앞 모텔에 장기 투숙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끌림으로 금지된 사랑에 빠진다.

인수와 서영의 사랑은 동병상련일까, 복수심일까, 상실감일까, 자기합리화일까, 순수한 동물적 끌림일까, 아니면 이들 모두일까. 이런 마음의 조각들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복잡다단한 심정의 회오리가 ‘외출’엔 생명처럼 소중한 매력이 될 터이지만, 인수와 서영이 화면에 딱 등장하는 순간부터 이런 고민은 사라진다. 두 사람은 ‘연결될 게 뻔한’ 습관적 사이로 여겨지는 것이다.

“(배우자들이) 깨어나면 어떡하실 건데요?”(서영) “복수하려고요.(웃음)”(인수) “우리…, 사귈래요? 둘(배우자들)이 기절하게.”(서영)

기가 막힌 이런 대사가 인물에 찰싹 달라붙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다니는 건, 행위의 디테일은 있지만 정작 심정의 디테일이 부족한 이 영화의 설계도에서부터 예견된 건지 모른다. 영화 속 대사는 저 하늘의 별 같은 존재 아닐까. 제아무리 반짝이더라도 밤이 아니면(상황이 무르익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한석규와 심은하, 이영애와 유지태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를 커플로 내세우면서도 그들의 스타성을 쓱쓱 지워버림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빛나게 했던 허진호 감독. 그가 문득 그리워진다. 18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