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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뿌리읽기]豕(돼지 시)

입력 | 2005-09-09 03:08:00


豕는 튀어나온 주둥이와 뚱뚱하게 살찐 몸통, 네 발과 아래로 처진 꼬리를 가진 돼지를 형상적으로 그렸는데, 이미 가축화된 집돼지로 보인다. 이에 비해 체(돼지 체)는 갑골문에서 화살(矢·시)이 돼지 몸에 꽂힌 모습이어서 사냥으로 잡은 야생 돼지임을 보여 주며, 豚(돼지 돈)은 ‘새끼 돼지’를 지칭하기 위해 豕에 肉(고기 육)을 더해 만든 글자다.

멧돼지는 육중한 몸을 가졌음에도 그 어떤 동물보다 빠르고 저돌적이며 힘이 센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豕는 사납고 힘이 넘치는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는데, 豪(호걸 호)는 高(높을 고)의 생략된 모습과 豕로 구성되어 멧돼지(豕) 등에 난 높고(高) 센 털에서 그 이미지를 가져왔다. 이런 야생 돼지는 수렵의 주된 대상이었기에 逐(쫓을 축)은 멧돼지(豕)를 쫓아가는(착·착) 모습을, (희,선)(들불 선)은 들에 불(火·화)을 놓아 돼지(豕)를 몰아 잡는 사냥법을 그렸다.

또 X(서로 잡고 어울려 싸울 거)는 호랑이(호·호, 虎의 생략된 모습)와 멧돼지(豕)가 서로 붙어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그 싸움이 얼마나 극렬했던지 X에 力(힘 력)을 더한 *(심할 극·劇의 원래 글자)이 만들어졌고, 이후 力 대신 刀(칼 도)를 써 싸움의 극렬함을 더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야생 돼지의 포획은 그리 쉬운 일도, 항시 확보 가능한 것도 아니어서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집에서 기르기 시작했는데, 중국에서 돼지의 가축화는 대단히 일찍 이루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발 얽힌 돼지걸음 축)은 돼지(豕)에서 생식기가 거세된 모습을 그려 전문적인 사육이 상나라 때 이미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며, 환(기를 환)은 두 손으로 돼지를 잡고 ‘돌보며 키우는’ 모습이다. 또 혼(뒷간 혼)은 원래 (혼,환)으로 썼는데, 돼지(豕)가 우리(국·국) 속에 갇힌 모습이며, 돼지우리는 항상 배설물 등으로 축축하기에 水(물 수)를 더해 의미를 강화했다.

하지만 象(코끼리 상)은 원래 코끼리를 그렸으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와 멧돼지가 연계되어 豕부수에 통합되었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