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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파업… 우리들의 빈손 귀성”

입력 | 2005-09-09 03:08:00

‘투쟁’과 ‘한숨’현대·기아자동차의 부분파업이 2주째 계속되면서 협력업체들도 공장 가동 중단으로 매출 손실이 늘어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현대자동차 직원들의 파업 모습(위)과 8일 울산의 한 협력업체 직원이 근무시간에 낮잠을 자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울산=손효림 기자


《“추석이 얼마 안 남았는데, 고향에 제대로 된 선물이라도 사 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8일 오전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인 경북 경주시 A사. 작업이 중단된 공장 라인을 바라보며 직원 신모(42) 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신 씨는 “현대·기아차 파업 때문에 잔업이나 특근이 아예 없어져 월급이 40%나 줄어들게 생겼다”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겁이 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현대·기아차의 부분파업이 2주째로 접어들면서 협력업체 직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은 잔업, 특근 수당이 급여의 30∼40%에 이른다. 하지만 공장 가동이 중단돼 잔업이나 특근은 고사하고 정규근무 시간에도 제대로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 부품 조립 대신 잡초 뽑고

“회전하는 기계 축에 옷이 말려들지 않도록 작업할 때는 반드시 방호덮개를 설치해야 합니다. 귀찮다고 잘 안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옷이 말려들면 큰 사고로 이어지니까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날 A사는 직원 80여 명을 대상으로 안전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회사 사장은 “시간을 때우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현재 직원 50명은 억지로 휴가를 보낸 상태”라고 털어놓았다.

자동차 문에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현대·기아차의 파업으로 이미 30여억 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스포티지, 아반떼 등의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 5000여 평은 불이 꺼진 채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다. 직원 1명만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수출용 부품을 만드는 라인은 분주히 가동되고 있었다.

베르나 부품을 만드는 신모(53·여) 씨는 수출용 부품을 검사하고 있었다. 신 씨는 “할 일이 없어 이미 검사한 제품이라도 다시 검사하며 일거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며 “출근을 해도 할 일이 없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고 호소했다.

직원 김모(49) 씨는 “우리 회사보다 작은 회사는 곧 부도날지도 모른다”며 “대기업이 기침하면 그 아래 기업들은 몸살을 앓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 회사 사장은 “추석 상여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서 100억 원 가까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이 상태로 가다가는 부도는 시간문제”라고 했다.

자동차 바퀴 부품을 만드는 인근 B공장의 임원은 “시간을 메우기 위해 오늘 아침에도 직원들이 회사 청소를 하고 잡초를 뽑았다”며 “매출이 30억 원 이상 줄어 추석을 앞두고 자금을 어떻게 꾸려갈지 걱정뿐이다”고 말했다.

○ 추석 앞두고 가슴만 답답

울산에 있는 협력업체 C사도 이날 오후 전 작업장이 가동을 멈춘 상태였다. 회사 전광판에 뜬 라인별 시간당 생산량은 모두 ‘0’을 가리키고 있었다.

차량 운전대 등을 조립해 납품하는 이 회사는 이미 230억 원가량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

오후 2시경 직원들은 가동을 멈춘 공장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거나 둘씩 짝지어 배드민턴이나 탁구를 하고 있었다. 눕거나 엎드려서 낮잠을 자는 직원도 있었다.

박모(42) 씨는 “월급이 40%가량 줄어들기 때문에 주말에 가족과 외식하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며 “추석에 부모님께 드릴 용돈도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임모(41) 씨는 “부모님이 수시로 전화해 ‘어떻게 돼 가느냐’고 물으시는 등 온 가족이 가슴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아무래도 올 추석 선물비용은 많이 줄여야 할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울산·경주=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