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복잡한 연결망을 이룸으로써 고도의 인지능력을 발휘한다. 여러 뇌 신경세포끼리 연결돼 특정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장면을 상상한 이미지. 사진 제공 서울대
“MRI까지 찍었어?”
영국의 토트넘 홋스퍼 구단에 입성한 한국의 축구스타 이영표 선수가 지난달 30일 건강테스트에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까지 마쳤다는 소식이 들렸다. 뼈 속이나 관절 상태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이 첨단의료장치가 놀랍게도 운동선수의 몸 상태를 체크하는 데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운동선수의 ‘천재성’을 가리기 위해 더욱 놀라운 검사가 벌어질지 모른다. 온몸의 신경계를 관장하는 뇌를 영상으로 촬영하면 천재적인 운동성을 갖췄는지 여부를 알아낼 수 있지 않을까.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등장할 만한 이 얘기가 적어도 ‘지적 능력’에 관한 한 국내 과학자에 의해 현실화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대 생명과학부 이건호 연구교수. 그는 국내에서 ‘영재’라 불리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까다로운 문제를 풀게 하면서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의 상태를 촬영했다. 조사 결과 지적 능력이 뛰어날수록 뇌의 윗부분(후두정엽)에서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부위가 뇌의 앞부분(전전두엽)이라는 사실은 몇 차례 밝혀진 적이 있었다. 2003년부터 2년간 과학기술부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치료기술개발 연구사업단’의 지원으로 이뤄진 이번 연구는 국제저널 ‘뉴로이미지(NeuroImage)’ 최신호에 소개됐다.
서울대 이건호 교수팀이 추론능력을 담당하는 뇌 부위를 포착한 영상. 좌뇌와 우뇌 앞부분(전전두엽)과 윗부분(후두정엽)에서 붉게 나타난 곳이 추론능력을 관장하는 곳이다. 사진 제공 서울대
이 교수는 국내 부산과학고 등 특목고 학생 25명과 일반 인문계 및 실업계 고교생 25명을 선발했다. 특목고 학생은 지능지수(IQ)가 동일 연령대(16∼18세)에서 상위 1% 이내에 속했고 나머지는 30∼70%에 해당했다.
이 교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나타내는 한 가지 지표인 ‘추론능력’을 측정했다. fMRI 장치 안에 학생을 눕히고 눈앞에 장치된 화면을 통해 인지심리학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공인된 ‘레이븐 테스트’를 실시하면서 뇌를 촬영한 것. 보기에서 주어진 몇 가지 도형의 변화 패턴을 인지한 후 문제에서 원하는 도형을 추론하게 하는 방식이다.
예상대로 IQ가 높은 학생일수록 정답을 많이 맞혔다. 그런데 정답을 맞힐 때 후두정엽의 특정 부위가 뚜렷하게 활성화됐다. 특히 정답을 많이 맞힌 학생일수록 활성화 정도가 강하게 나타났다.
이 교수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발히 활동하면 혈액이 몰려들어 fMRI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며 “이번 연구는 사람별 추론능력의 차이를 생물학적으로 처음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가 한국의 영재교육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재를 선발할 때 fMRI 촬영 결과를 참조하자는 것. 지금까지는 영재성을 판별할 때 시험을 치르게 하거나 과제 수행 과정을 가까이서 관찰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높은 점수를 받아도 이것이 타고난 능력 때문인지, 후천적 학습 효과 때문인지 알기 어렵다.
이 교수는 “추론능력은 학계에서 선천적인 능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이번 연구는 천부적인 추론능력을 갖춘 영재를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연 추론능력이 선천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뇌기능 활용 및 뇌질환치료기술개발 연구사업단 김경진(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단장은 “뇌가 청소년기에도 계속 성장한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에 추론능력이 반드시 선천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소년기의 뇌는 전반적으로 신경세포의 수가 늘고 이들끼리의 연결이 증가해 유아기에 버금가는 ‘뇌의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 특목고 학생들이 과거에 도형 문제풀이를 많이 해 봤을 수도 있다.
또 지적 능력에는 추론능력 외에도 창의성이나 집중력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이 교수의 이번 연구는 뇌 영상만으로 영재를 판별할 수 있다기보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생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시했다는 데서 의의가 크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