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나오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다.
‘애국자’라는 말이 쑥스럽지만 외국 생활을 하다 보니 못내 고국이 그립다. 몇 년 되지 않은 외국 생활에도 이런데 수십 년 동안 고국을 떠나 생활하는 우리 교민들의 마음은 어떨지 헤아려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코리아.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통해 듣는 한국의 소식은 ‘코리아’라는 이름만 나와도 반갑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운전을 하다가 국산 자동차들을 발견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쇼핑할 때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문구가 찍힌 물건을 만날 때도 그렇다. 같은 물건이라면 먼저 손이 가기 마련이다.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과 비교할 때 가격이나 성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한국 물건을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한국 상품이라 샀는데 ‘다른 나라에서 만든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사용설명서를 읽다 보면 그렇다.
설명서는 보통 영어와 스페인어로 쓰여 있다. 이 둘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그 다음으로는 중국어와 일본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본산 제품의 설명서는 영어, 스페인어 그리고 일본어로 쓰여 있다는 점이다. 일본어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일본계 교민밖에 없을 텐데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외국에 사는 일본인을 위한 배려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설명서를 가지고 일본말을 배운다고 덤비지 않는 한 전 세계에서 흩어져 사는 일본 사람들만을 위한 설명서인 셈이다.
아쉽게도 메이드 인 코리아에는 ‘한국어 설명서’가 없다. 미국에서 팔리는 물건이니 그럴 수 있다. 설명서야 그 제품을 많이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까.
그래도 한국계 교민이나 주재원들은 한글로 읽으면 금방 이해할 텐데 영어로 설명서를 읽으려니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한국어야 우리만 사용하니까 수출품에는 필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제품이 어떠한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외국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이나 교포들이 아닐까. 외국에서 한글로 된 문구 하나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작은 배려인 한글 설명서는 보는 이에겐 큰 감동이 되는 것이다.
더불어 이는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글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한글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수출품에 들어 있는 한글 설명서. 우리 글자를 알리는 일일 뿐 아니라, 외국 생활을 하는 유학생이나 교민들에게 잠시라도 고국을 생각나고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이호진 미 테네시 주 세인트주드어린이연구병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