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의 물랭루주는 그에 의해 그림 속으로 들어왔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64∼1901). 화가로서의 그의 삶은 물랭루주와 동의어다. 물랭루주를 중심으로 카바레 무도회장 카페 창녀촌 등 1890년대 몽마르트르의 밤 풍경을 즐겨 그리면서 그 이면의 애환을 포착해 낸 로트레크.
그는 1901년 9월 9일,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몽마르트르의 밤 풍경을 사랑해 그걸 예술로 표현했지만 그 낭만과 사랑이 지나쳤던 것일까. 알코올 의존증과 성격 파탄 속에 고통받다 짧은 생을 접어야 했다.
로트레크의 삶은 어린 시절부터 불행했다. 10대 때 두 차례의 사고로 인해 두 다리의 성장이 멈추어 버리는 가혹한 형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고 이후 로트레크는 키가 자라지 않아 152cm에서 멈추었다.
로트레크는 그림으로 시련을 극복했다. 10대 시절엔 얼굴 표현에 관심이 많아 초상화를 많이 그렸다. 그의 초상화는 주인공의 내면 깊은 곳을 포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885년 스물한 살 때, 파리의 몽마르트르에 정착하면서 그의 그림은 중요한 변화를 겪게 된다. 몽마르트르의 밤에 눈을 뜬 것이다. 카바레 무도회장 소극장 카페를 드나들면서 그곳 사람들의 애환을 보고 느꼈다. 그것은 그대로 로트레크의 미술이 되었다.
1889년 물랭루주의 개업은 로트레크가 예술가로서 유명세를 타는 데 결정적 계기였다. 1891년 물랭루주는 그에게 포스터를 의뢰했다. ‘쾌락의 여왕’ ‘다방 자포네’ 등의 제목을 달고 거리에 나붙은 그의 포스터는 곧바로 인기를 끌었다. 간결 명료한 표현, 밤의 문화에 대한 풍자, 밤무대 사람들의 비애를 잘 담아 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트레크는 그렇게 몽마르트르의 스타로 떠올랐다.
19세기 말 파리는 기존의 전통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추구하던 곳이었다.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의 밤 풍경에서 시대적 변화를 읽어 냈다. 근엄함을 벗어던지고 밤의 일상을 그림 속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밤의 보헤미안이었던 로트레크. 그러나 알코올 의존증, 정신 이상 등으로 인해 그의 마지막은 쓸쓸했다. 그가 남긴 것은 미완의 초상화뿐이었다고 한다. 미처 뜻을 다 이루지 못한 그의 삶을 보여 주는 듯하다.
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