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인 마이클 힝슨 씨가 8일 국가인권위에서 장애인 보조견 활성화를 위한 강연을 마친 후 자신의 보조견인 로젤을 쓰다듬고 있다.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난 지 4년이 지났다. 여전히 전 세계는 그날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경험을 한 이도 있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마이클 힝슨(55) 씨는 당일 세계무역센터 78층에서 고객과 상담 중이었다. 오전 8시 45분 굉음이 나더니 건물이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램 판매회사의 뉴욕 지사장이었던 그는 고객과 동료를 먼저 대피시켰다.
그리고 로젤의 움직임을 살폈다. 지금이 바로 대피할 때라고 느낀 힝슨 씨는 로젤과 함께 비상구로 향했다. 로젤은 그가 1999년부터 함께했던 일곱 살의 안내견.
“저는 이정표나 빛에 의존해 대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오히려 침착할 수 있었습니다.”
78층부터 1층까지 로젤을 따라 쉼 없이 내려왔다. 건물을 빠져나왔지만 먼지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힝슨 씨는 로젤에게 오른편에 있는 상점으로 들어가도록 했다. 로젤은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곧 멈춰 섰다. 힝슨 씨에게 계단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이후 사고현장 바로 옆 지하철역 안으로 들어간 힝슨 씨는 붕괴된 건물의 잔해가 눈에 들어가 당황하고 있던 한 여성까지 안전 장소로 이끌었다. 모두 로젤 덕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趙永晃)는 8일 힝슨 씨를 초청해 ‘장애인 보조견 활성화를 위한 강연회’를 열었다.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 9월 현재 국내 1급 시각장애인 2만7605명 가운데 59명만이 안내견을 사용하고 있다. 또 1급 청각장애인 2611명 중 청각 도우미견과 함께 생활하는 장애인은 42명뿐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