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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구]해수온도 1도 상승이 몰고온 대재앙

입력 | 2005-09-10 03:00:00


50년 만의 최대 강풍을 동반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재즈의 발상지로 유명한 미국 뉴올리언스 시의 80%를 침수시켰다. 아울러 30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재산 피해와 수천 명에 이르는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며칠 전 한반도를 비껴간 태풍 ‘나비’는 울릉도에 544mm라는 엄청난 비를 퍼부으며 모든 생활기반을 마비시켰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태풍과 허리케인의 세기가 50%나 증가했고 앞으로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라는 우려할 만한 연구결과가 나온 지 불과 두 달 만에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많은 과학자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온도의 상승을 지목하고 있다. 바다는 과학과 기술 분야 최고 선진국이라는 미국조차도 미처 대처하지 못할 재앙을 어느 날 갑자기 일으킨 것일까.

바다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큰 열 저장고다. 지금까지 인류문명이 발전하고 삶이 풍요해지면서 끊임없이 뿜어내 온 엄청난 열을 바다는 말없이 수용해 왔다. 최근 동해에서는 해수면뿐만 아니라 수심 1000m의 바다 속에서도 매년 섭씨 0.0125도씩 수온이 상승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바다 표층부터 수심이 깊은 곳까지 그간 쌓인 엄청난 규모의 열에너지가 태풍과 허리케인이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분출되면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할 것을 미처 내다보지 못했기에, 아니 짐작하면서도 제대로 대책을 세우지 않았기에 인류는 카트리나와 같은 재앙을 맞은 것이다.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섭씨 26도 이상인 북서태평양에서 주로 발생한다. 해수면이 따뜻해지면 해면에서 수증기가 증발하고, 이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내놓는 잠열(潛熱)이 태풍의 에너지원이다. 이는 원자폭탄 1만 개, 수소폭탄 100개에 버금가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다. 태풍 발생의 온상인 북서태평양의 수온이 이전보다 높아질수록 잠재적인 피해지역인 우리나라를 거치는 태풍의 세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전 세계 대양의 해수면 온도는 매년 섭씨 0.0143도씩 상승해 왔다. 북반구는 남반구보다 3배나 빠르게 상승했고, 한반도와 접한 동해는 전 지구 평균의 6배에 이르는 빠른 속도의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태풍이 발생하는 해역인 북서태평양의 수온 상승은 동태평양에 비해 9배 이상 빠르다. 이런 사실들은 이전에 우리가 경험한 것보다 더 강력한 태풍들이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참고로 동태평양 적도 해역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에 비해 섭씨 2도 정도 국지적으로 올라가는 엘니뇨가 발생하면 가뭄, 홍수, 폭우 등 기상변화로 인해 여러 나라가 엄청난 사회·경제적 몸살을 앓는다. 1982, 83년과 1997, 98년에 발생했던 엘니뇨는 전 세계적으로 각각 80억 달러와 230억 달러의 천문학적인 피해를 끼쳤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1조 원이 넘는 막대한 재산상의 손실을 보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태풍을 일시적인 재해를 일으키는 기상현상으로 생각해 왔다면 이제는 경제, 사회, 무역, 안보 등에 이르는 종합적인 문제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할 때가 됐다고 본다.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해수 온도가 조금씩 상승했고 ‘겨우’ 섭씨 1도 정도의 변화라고 무시하기 쉬운 해수 온도의 상승이 이제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무서운 허리케인과 태풍을 몰아오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력한 태풍이 올지, 또 급변하는 지구환경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지 등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

김구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BK21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