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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칼럼]强手와 惡手

입력 | 2005-09-10 03:00:00


‘궁(窮)하면 손을 빼라’는 기훈(棋訓)이 있다. 무거운 돌을 움직이면 생즉여사(生卽如死)라, 살아도 죽은 것과 진배없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궁한 처지다. ‘연정(聯政) 포석’이 영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돌을 두었는데도 집도, 세력도 만들지 못했다. 여론은 등을 돌렸고 여권 내의 반응도 시큰둥하다. 오히려 상대(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야무지게 끊어오자 퇴로(退路)마저 여의치 않은 형국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돌을 쉽게 버릴 것 같지는 않다. “버리기엔 너무 아쉽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일단 봉수(封手)하고 중미 및 유엔 순방길에 올랐다. 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복기(復棋)를 해 보자. 어디서부터 잘못돼 판이 이 모양이 됐는지. 노 대통령은 처음 여소야대(與小野大) 탓을 했다. 그러면서 권력의 절반을 내놓겠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윤광웅 국방부 장관 해임 건의가 빌미였다. 하지만 이 건은 민주노동당과 손을 잡아 간단히 처리된 사안이다. 첫 수부터 잘못 둔 셈이다.

두 번째 수는 지역구도 극복이었다. 권력을 몽땅 내줄 수 있다는 강수(强手)였다. 그러나 이 또한 무리수였다. 명분이야 어떻든 현실성도 적실성도 없는 데다 위헌(違憲) 소지가 명백했다. 강수는 또 다른 강수를 낳는다고 ‘임기 단축과 이선 후퇴’까지 내놓았으나 대다수 국민의 귀에는 무책임한 소리로 들렸을 뿐이다.

세 번째 수는 민생경제를 위한 초당(超黨) 내각. 그렇지만 연정이나 초당 내각이나 같은 소리인 데다 “노무현 시대를 빨리 끝내는 게 어떤가”라고 해도 상대가 “그런 말씀 그만 하세요”라고 자르니 이마저 헛수가 돼 버렸다.

애초에 수순(手順)이 잘못됐다. 여소야대 탓을 하기 전에 여대야소가 왜 1년여 만에 역전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반성하고 민의(民意)에 따르는 국정 쇄신책부터 내놓아야 했다. 이때 실용주의 비전을 내놓고 거국내각을 제안했다면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선수(先手)의 이점은 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역구도 극복이 다음 수인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어쨌든 한나라당이 거국내각 참여에 불응할 경우 내놓는 것이 그나마 옳은 수순이었다. 그것도 그 목표가 선거제도 개편이라면 구체적인 실상을 놓고 설득과 타협으로 여야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한다.

지난 총선 득표율을 보면 (탄핵 역풍이 있었음에도) 서울에서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1%포인트밖에 밀리지 않았는데 의석수는 절반(32 대 16)밖에 안 됐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영남에서 20∼30%씩 득표했지만 의석수는 4석(한나라당은 60석)에 그쳤다. 이는 대의(代議)민주주의를 왜곡하거나 훼손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 점에서 박근혜 대표가 ‘노(NO)의 판정승’을 즐길 계제는 아니다. 현실적 대안 없는 반대만으로는 ‘영남당’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선거제도 손질을) 하지 말자고 하는 것은 지금이 유리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는 노 대통령의 윽박지름도 적절치는 못하다. 한나라당의 호남 득표율은 3% 선에 묶여 있다. 원인이야 어떻든 이런 상황에서 유불리를 따지고 든다면 제 논에 물대기식 정쟁(政爭)이 될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이 또한 당장의 실현 가능성은 없다고 하더라도) 호남에도 호소했어야 했다. 이제 한나라당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에서 차츰 벗어날 때가 됐다고. 지역구도를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호남의 동참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그런데 도리어 악수(惡手)를 둬 버렸다. “열린우리당 창당은 호남당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는 발언은 그렇지 않아도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데 이럴 수가 있느냐’는 말들이 나오던 차에 호남 민심을 더욱 자극할 것이 뻔하다. 이래저래 도랑도 못 치고 가재도 놓칠 판이다.

노 대통령의 다음 수를 두고 열린우리당 탈당과 국민투표에서 개헌과 대통령직 사퇴, 조기 선거에 이르기까지 온갖 설(說)이 난무하고 있다. 이래서는 아무리 “경제가 1순위”라고 해 봐야 국민이 신뢰할 리 없다. 궁하면 손을 빼야 한다. 무거운 돌을 버린다고 아쉬워할 사람이 있겠는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