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 작 ‘우리는 전생에 물고기였다’(2005년).
두 남자가 수족관 같은 어항을 맞들고 서 있다. 어항 안에는 얼굴은 사람인데 몸은 물고기인 한 남자가 엎드려 있다. 그의 표정에는 항복과 절망, 저항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다. 작품 제목은 ‘우리는 전생에 물고기였다’.
그러고 보니 이 남자의 전생은 물고기였나 보다. 물고기는 이생 이전의 삶, 다시 말해 우리 삶의 원형 같은 것을 빗대고 있다. 우리는 삶이라는 늪에 빠져 그 원형을 잊어버리며 산다. 원시상태의 우리는 물고기처럼 자유로운 존재이건만,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점차 사회적 규범과 종교, 도덕에 의해 스스로를 구속하기 시작한다. 마치 어항에 갇힌 신세처럼 말이다. 이 원형과 태초의 나를 망각하며 살아가는 ‘나’를 두 남자가 들고 있다. 이는 곧 이승에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로는 나를 일으키지만 때로는 무너뜨린다. 때로는 분노하게 하고 때로는 행복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조각가 이일호(49) 씨의 신작이다. 현대조각에서 독특한 조형미와 상상력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가 오랜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는 “오늘의 미술과 나는 같이 가고 싶지 않다. 해서 나는 먼 옛날로 거슬러 오르거나 아주 먼 미래를 꿈꾸며 산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 개인의 과거와 미래의 단상을 보여 주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예를 들어 ‘벼룩’ 시리즈는 어린 시절의 가난하고 고난스러웠던 일상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는 “‘나이와 육신이 벌써 시대의 중심에서 내몰려 있음을 실감하며 요즘 시대와 별개로 숙성된 헛것들을 자축하며 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전시공간도 작고 작품 수(6점)도 적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중견작가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큰 전시’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큐브 스페이스. 16일까지. 02-720-7910
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