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할 때 악보만 볼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시각장애인으로서 뛰어난 음악성을 보여준 인물은 많다.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니콜라스 콘스탄티니디스, 뉴에이지의 음악가 캐빈 컨, 그리고 테너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와 스티브 원더...
대전에도 이를 꿈꾸는 청소년들이 있다. 대전맹학교 초중고생 18명으로 구성된 관악부.
공립학교인 이 학교에 관악부가 생긴 것은 개교 30여 년만인 1980년대 초이지만 활동은 미약했다. 정서함양과 여가활동 차원에 그쳤다.
하지만 2002년 공주대에서 음악·특수교육을 전공한 손동현(孫東賢·31) 교사가 부임하면서 달라졌다. 창고에 넣어둔 트럼펫과 섹소폰, 플루트을 꺼내 새로 손질하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손 교사는 “하루에 2∼3시간씩 연습해도 점자(點字) 악보를 머릿속으로 기억해 연주하기가 어렵지만 음에 대한 집중력은 정상인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3년 여 동안 연습을 계속하자 탁월한 능력을 지닌 학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트럼펫의 서우정(19·고 3) 양은 어떤 음을 듣고 그 고유의 음높이를 즉석에서 판별할 수 있는 절대음감이 뛰어난데다 피아노 즉흥연주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관악부의 능력은 지난해부터 나타났다. 대전시교육청이 주관한 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관악합주 부분 1등을 차지한데 이어 올해에도 같은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일반 학교의 관악부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경쟁에서 이들은 머릿속에 간직한 악보로 ‘플로렌티나 행진곡’을 연주해 관객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선배들이 ‘후배에게 새 악기 사주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손 교사는 “개인적으로 연습할 때에는 그나마 점자악보를 볼 수 있어 다행이지만 합주를 할 때에는 악보 없이 다른 사람과 하모니를 연출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지도로 더 좋은 성과를 얻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