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를 일기로 13일 세상을 떠난 홍덕영(洪德泳·사진) 선생은 한국 축구의 오늘이 있게 한 축구계의 큰 별이었다.
1944년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입학시험을 보러 갔다가 고향 선배의 권유로 축구부 입단 테스트를 받게 되면서 시작한 축구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한국 축구가 최초로 진출한 올림픽(1948년 런던 올림픽)과 월드컵 본선(1954년 스위스 월드컵)은 그에게 영욕의 무대였다. 런던 올림픽 때 주전 골키퍼 차순종의 부상으로 골문을 지키게 된 그는 멕시코와의 첫 경기를 5-3으로 이겼으나 8강전에서는 스웨덴에 0-12로 졌다. “당시 슈팅이 48개였는데 그중 12개를 먹었으니 잘한 것 아니냐”고 그는 나중에 회고했다. 공을 막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온몸이 멍투성이였다.
스위스 월드컵 때는 월드컵 사상 최다 실점(예선 2경기 16실점)의 주인공이 됐지만 투혼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현지 축구팬에게서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헝가리에 0-9로 패한 뒤 그는 “비 때문에 빗물을 잔뜩 머금은 공은 단단한 볼링공 같았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 공을 잡으면 관중석으로 차냈다”고 했다.
2002년은 그에겐 특별한 해였다. 까마득한 후배들이 월드컵 4강까지 진출한 것을 지켜본 그는 “반세기 만에 이 늙은이의 한을 풀어줘 정말 고맙고 대견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