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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대가리? 누가 새를 모욕하나

입력 | 2005-09-18 15:27:00


‘신활주로 ○○○비행기 착륙 방향에 백로 십여 마리 출현.’

긴급사태다. 김포공항 조류퇴치반의 노란 지프는 확성기로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활주로 근방 녹지대로 출동한다. 몇몇 조류퇴치반 대원들은 차량에 탄 채로 공포탄을 장전해 백로 떼를 향해 쏜다. 폭음발사기도 쉴 새 없이 대포 소리를 낸다. 이윽고 비행기 쪽으로 날아가던 백로 떼가 진로를 바꾼다. 앞장선 우두머리를 따라 비행기 반대편으로 날아간다. 대원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김포공항은 지금 세떼와 전쟁중

추석 연휴기간 동아닷컴 취재팀이 찾은 김포공항 활주로의 상황은 급박함의 연속이었다. 공항에서 새는 ‘살아있는 미사일’이다. 만약 운항중인 비행기의 엔진이나 동체에 새가 부딪히는 ‘조류충돌’(버드 스크라이크)이라도 일어나면 아찔한 대형사고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김포공항 조류퇴치반 대원 5명은 일출부터 일몰까지 1년 365일 새떼와의 전쟁을 벌인다. 이른바 새를 전담하는 ‘배트맨(BAT·Bird Alert Team)’인 것. 이들은 수렵면허와 총포소지허가증을 가진 조류 전문가들로 경력이 6년 이상이다. 이들의 활약으로 김포공항 외곽의 조류충돌사고는 지난해 9건, 올해 5건 인데 반해, 공항 내 사고는 한 건도 없다.

겨우 숨을 돌릴 찰라, 또 다시 백로 떼가 날아들었다. 이 때는 아까처럼 급박하게 출동하지는 않는다.

이승만(50) 과장은 “비행기의 이착륙 때는 조류가 항공기 엔진에 빨려 들어가 가능성이 높아 쫓아내는 작업을 일시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비행기가 완전히 착륙하자 노란 지프는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새들을 쫓아간다. 활주로 바깥쪽으로 쫓아 버리는 것이다. 조류보호를 위해 사살하기 보다는 쫓아 보내는 방식으로 퇴치한다.

최용대(46) 대원은 “새를 죽이려 들면 하루에 다 잡을 수도 있겠지만, 총기는 유해조수에 한해서 최소한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로는 얄밉게도 대원들과 100~200여m 거리를 두고 숨바꼭질하듯 자리만 옮겨 다닌다. 김포공항 240만평을 5명 대원들이 지프차 2대로 막고 있다. 이 넓은 평원을 활보하는 새들은 하루 평균 50~100마리. 일출부터 일몰까지 끊임없이 대원들과의 ‘술래잡기’를 계속한다.

‘새 전문가’ 이상구(57) 대원은 “머리 나쁜 사람보고 ‘새대가리’라고 하는데, 그거 뭘 모르는 말씀이다. 이 녀석들이 어찌나 영리한지 노란 지프가 사이렌만 울리며 나타나면 멀찌감치 도망갔다가, 차가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곤 한다”고 설명했다.

급한 상황에는 총을 쏘기도 한다. 이렇게 죽어나가는 새는 하루 평균 3~5마리. 하지만 이들의 빈자리는 곧 다른 새들로 채워진다. 죽은 새들은 빨리 썩으라고 석회석을 뿌려 매장한다. 간혹 황조롱이 같은 천연기념물이 나타나면 공포탄을 쏘아 멀리 쫓아 보낸다.

김병일(59) 대원은 “누구는 ‘잡은 새를 먹지 않느냐’고 하는데 절대 그런 일은 없다”며 “죽은 새가 공항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김포공항 녹지대는 메뚜기 떼 등 벌레들이 많기 때문에 까치나 백로, 기러기, 청둥오리들이 많이 몰려든다. 주변이 다 농약을 뿌리는 농토이기 때문에, 서식 환경이 좋은 공항 활주로 주변에 둥지를 트는 것. 이 때문에 대원들은 새집 제거도 한다. 많지는 않지만 가끔씩 출현하는 너구리 떼도 쫓는다.

추석 때도 ‘5인의 총잡이’는 귀향을 반납한 채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새를 쫓는다.

‘추석에 고향에 못가서 서운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대원은 “가족들이 많이 서운해 하긴 하지만 항공기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지요”라고 말한다.

다른 대원들도 “올 추석에는 항공기가 많이 증편 운항됩니다. 때문에 더욱더 여행객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도록 불철주야로 노력해야지요“라며 각오를 다진다.

▷조류충돌(버드스트라이크)란?

조류충돌은 항공기에 새가 충돌해 일어나는 사고를 말한다. 시속 370㎞로 이륙하는 비행기에 0.9㎏짜리 청둥오리 한마리가 부딪치면 항공기는 순간 4.8t의 충격을 받는다. 새가 엔진에 말려드는 경우 엄청난 속도로 빨려든 새는 엔진 내의 블레이드를 망가뜨려 엔진을 못 쓰게 만든다.

국내에서는 매년 평균 60~80건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2004년 7월 청주발 제주행 항공기는 이륙 직후 왼쪽 엔진에 새가 부딪혀 착륙했다. 정밀점검을 받은 뒤 다시 이륙했다. 2003년 5월 예천공항에서도 공군 전투기가 ‘조류 충돌’로 추락했다. 2000년 11월에는 부산발 서울행 항공기 엔진에 청둥오리 4~5마리가 한꺼번에 끼어 부산으로 회항하는 소동을 빚기도 했다. 1995년 미 공군기는 거위가 엔진으로 들어가면서 추락해, 탑승자 24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 때문에 각 공항은 별도의 조류퇴치반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약 덕에 조류충돌사고는 전국 공항 기준 2002년 71건, 2003년 67건, 2004년 56건, 올해는 6월까지 17건으로 계속 줄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