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스포츠 케이블 채널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다. 한국 야구 100주년을 맞아 포지션별 최고 선수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신기한 것은 박찬호가 참가 패널 대부분에게서 외면을 받았다는 사실. 투수 부문에는 당대 최고인 선동렬과 최동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돌파한 박찬호가 논외가 되다시피 한 것은 뜻밖이었다.
일본에서 날렸던 장훈이나 백인천, 재일동포로서 국내에 역수입돼 대단한 활약을 펼친 장명부 김일융 김무종 같은 이는 박찬호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번엔 한 스포츠 전문지로부터 전화 설문조사를 받았다. 1999년 이후 국내 프로를 거치지 않은 해외 진출 선수의 2년간 국내 복귀 금지 조항에 대한 의견을 묻는 전화였다.
기자는 대뜸 둘 다 맞는다는 양시론을 폈다. 이 조치는 해외파에겐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지만 국내 야구를 보호하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다는 게 기자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앞의 두 사례에서 나타나듯 그동안 기자가 국내 야구계의 수구(守舊) 논리에 얼마나 끊임없이 세뇌되어 왔는지 새삼 느껴졌다.
사실 해외파 복귀 금지 조치의 경우 요즘엔 사정이 달라져 해당 선수의 지명권을 가진 일부 구단은 족쇄를 푸는 데 동조하는 등 구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또 이 조치를 만들 때는 박찬호의 대박 신화에 고무된 유망주의 무분별한 해외 진출 러시와 메이저리그 구단의 손짓이 이어졌지만 이젠 거래가 뚝 끊어진 상태. 이승엽 임창용 진필중 같은 스타가 노크만 했다 물러났고 구대성은 1년도 안 돼 중도하차했다. 제2의 선동렬이라는 한기주가 고민 끝에 기아를 선택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이제 최소한 이 문제만큼은 시장의 기능에 맡기면 되지 않을까.
메이저리그에선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여전히 장래성 있는 유망주의 복귀를 막는 게 국내 야구를 보호하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이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게 오히려 득이 될 수도 있다는 역설의 논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