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맞아 지상파 TV 3사는 채널당 30편 안팎의 특집을 내보냈다. 13일 SBS TV ‘추석특집 진실게임’을 시작으로 특집 프로그램이 홍수를 이뤘다.
TV 편성은 일정한 틀과 질서를 갖고 있다. 시청자가 요일별로, 시간대별로 프로그램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종적·횡적으로 배치한다. 이른 아침에는 뉴스매거진, 늦은 아침에는 주부 대상의 토크쇼나 드라마, 낮에는 어린이 프로, 이른 저녁은 가족 시청 시간이고 오후 8, 9시대는 뉴스가 나가며, 심야에는 성인용 프로그램이 편성된다. 보통 2, 3시간 동안 같은 시청자를 겨냥하는 동일 유형의 프로그램을 묶어서 내보낸다. 이를 무드 편성 혹은 블록 편성이라고 부른다. 편성은 보통 한 주를 단위로 이루어지는데 같은 시간대에 같은 프로그램을 매일 반복해서 내보낸다. 이러한 줄띠 편성(strip programming)은 시청 습관을 유도하기 위한 방송사의 기본 전략이다.
특집이란 정규 프로그램 대신 들어가는 1회적, 임시적 단발 프로그램을 말한다. 높은 창의력과 슈퍼스타의 기용으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주목을 받고 경쟁자를 압도하는 효과가 있다. 특집 편성의 원조는 1950년대 미국 방송국 NBC의 사장 실베스터 위버였다. 그는 시청률 증대와 컬러 TV의 판매 촉진을 위하여 특집 전략을 구사했다. 특집은 원칙적으로 기존 포맷으론 담을 수 없는 실험적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 마련된다.
TV 3사의 추석 특집에는 특집으로서 자격 미달이 많았다. 형식과 주제, 시의성에 비추어 굳이 특집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을 만한 것이 적지 않았다. 18일 하루 동안 방송된 특집만 KBS2에 12개, MBC에 13개, SBS에 13개나 되었다. 차라리 ‘특집의 날’이라고 하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을까? 한마디로 ‘시청률 향상과 광고 수입 올리기’라는 얄팍한 상술 탓이다. 정규 프로그램에 ‘추석특집’을 붙이고 남녀 사회자가 한복을 입고 나오면 방송사 수입이 크게 늘어난다. KBS2의 경우 ‘생방송 세상의 아침’ ‘행복한 밥상’ ‘VJ특공대’ ‘스펀지’ ‘연예가중계’ 등 일상적인 프로그램조차 특집으로 위장하고 있다. ‘특선’ 영화와 더불어 온종일 특집 잔치다.
헤어졌던 가족끼리 모여 조상과 만나는 종적 연계의 명절이자 더불어 사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횡적 명절이 곧 추석이다. 하지만 추석의 참뜻을 새기는 프로그램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풍요 속의 빈곤, 특집 홍수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