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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지방의료원 진료 자청 노관택 前서울대병원장

입력 | 2005-09-21 03:10:00

노관택 서울대 명예교수는 의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지방 의료원에서 ‘진료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파주=이성주 기자


《경기 파주시 금촌동은 판문점까지 승용차로 20분이 안 걸린다. 이곳 경기도립의료원 파주병원 건물에 최근 이비인후과 진료 시작을 알리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병원은 벽지인 데다 박봉이라는 ‘옹이에 마디’인 조건 때문에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다가 뜻밖의 거물을 영입했다. 청우 노관택(靑旴 盧寬澤·75)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 그의 경력은 눈부시다. 1960년대 중이염 치료의 최고 명의로 이름을 떨쳤고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 서울대병원장, 아시아 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 연합회 이사장, 한림대의료원장, 대한병원협회 회장, 국제병원연맹(IHF) 이사 등을 역임했다. 꾸준한 봉사활동으로 라이온스클럽이 수여하는 무궁화사자대상과 중외박애상,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기도 했다.》

노 박사는 추석 연휴인 19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니스에서 열리는 국제병원연맹 총회에 참석하고 있다.

그는 15일 출국 전 마지막 진료를 마치고 진료실에서 “의사는 자신의 처지에 따라 진료, 연구 및 교육, 사회봉사의 세 길 중 하나라도 맡아야 한다”며 “지금까지 앞의 두 가지에 비해 뒤는 좀 소홀했는데 그걸 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노 박사는 매주 화 목요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처음에는 환자가 하루 10명이 채 안 됐지만 보름 만에 30명 정도로 늘었다. 그는 환자가 증가하자 진료일수를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하루에 150명 정도를 진료했어요. 그때는 전공의의 도움을 받아 진료했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지금은 차트에 처방전까지 혼자 다 쓰면서 진료하느라 그때보다 환자는 적어도 일은 더 많은 듯합니다.”

노 박사는 8월 말 경기도립의료원 박윤형(朴允馨) 원장이 “요즘 젊은이들이 지방 의료원 근무를 기피해 걱정”이라며 한숨을 쉬자 파주 근무를 자청했다. 나중에 주양자(朱良子·74)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자신처럼 경기 이천시에서 청진기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 박사는 “지방 의료원에는 공중보건의가 파견되지만 의무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떠나므로 책임감과 주인의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의료원이 전문의를 채용하기에는 재정이 너무 열악하다”고 소개했다.

지방 의료원은 의료보호 대상자가 60% 이상일 정도로 환자의 경제 사정이 대부분 좋지 않다. 노 박사는 2주 동안 후두(喉頭)덮개에 염증이 심한 환자를 3명 봤다. 결핵이 온몸에 번져 목이 붓고 목과 항문에 종양이 생겨 암으로 여겨지는 환자도 진료했다. 이들 모두 참다가 병을 키워 병원을 찾은 사람으로 대도시에서는 이런 사람을 보기 힘들다.

노 박사는 “정부에서는 수익과 관계없이 최선의 진료를 하라고 하는데 지방 의료원에서는 시설이 열악하고 인력이 부족해 큰 수술은 엄두도 못 내는 등 한계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노 박사는 울산의 농가 출신. 그 누구보다도 가난의 고통을 뼈저리게 아는 의사다. 그는 수업료 때문에 해군사관학교에 갈 것을 고민하다가 결국 서울대 의대를 택했다. 대학 2학년 때는 6·25전쟁이 일어나 부산에서 천막 수업을 들으며 의술을 익혔다.

“일부 젊은 의사는 윗세대 의사들이 논문도, 수술 실적도 변변찮았다고 무시하곤 해요. 그러나 윗세대 의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와 진료 환경을 만들지 않았다면 오늘의 좋은 성과가 가능할까요?”

그는 자신 세대의 의사들은 수술실에 냉방시설이 없어 여름에 팬티만 입은 채 수술했고, 피와 고름을 빨아들이는 석션(Suction)기기가 없어 수백 개의 거즈로 수술 부위를 닦아가며 환자를 살렸다고 돌이켰다. 귀한 외국 서적을 구하면 외우다시피 해 후학들에게 전했다. 이런 노력이 거름이 돼 전반적인 의학 수준이 발전했다는 것.

노 박사는 진료가 없는 날이면 집 마당에서 국화(菊花)를 돌보는 것으로 소일한다. 제례에 관한 책을 직접 지어 친지들에게 돌릴 정도로 예법에도 박식하다.

아들은 국내 유방암 치료의 최고 권위자인 노동영(盧東榮·서울대병원 유방센터장) 박사이고 이현재(李賢宰) 전 국무총리가 사돈이다. 동영 씨는 “아버지는 남을 헐뜯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파주=이성주 기자 stein33@donga.com

▽노관택 박사는▽

△1963∼1995 서울대 의대 교수

△1981∼1984 대한이비인후과학회 이사장

△1987∼1990 서울시립영등포병원장

△1990∼1993 서울대병원장

△1991∼1996 아시아 오세아니아 이비인후과학회 연합회 이사장

△1995∼2001 한림대의료원장

△1998∼2000 대한병원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