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벌의 옷으로 남은 아내, 그 옷들을 대신 입어 줄 여자를 찾는다는 내용의 ‘토니 타키타니’. 사진 제공 스폰지
“토니 타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로 토니 타키타니였다.”
이런 고백적인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일본 이치카와 준 감독의 ‘토니 타키타니’는 소설 같은 영화고 영화 같은 소설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옮긴 이 영화는 진공상태와도 같이 먹먹한 내레이션, 이 내레이션을 슬쩍 짊어지는 대사의 시적인 리듬과 묘미가 가슴 깊은 곳을 어루만진다.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린 이 영화는 ‘기억’과 ‘존재’에 관한 슬픈 질문을 던진다.
외로운 유년시절을 보낸 일러스트레이터 토니 타키타니(잇세 오가타)는 에이코(미야자와 리에)와 결혼하면서 처음으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에이코는 충동구매를 억누르지 못하는 옷 쇼핑 중독자. 에이코는 불의의 사고로 숨지고, 남편 토니는 아내가 남긴 731벌의 옷을 대신 입을 여성을 찾는 광고를 낸다. 마침내 히사코란 여자가 토니를 찾아온다.
마치 쉼표로도 말하는 음악처럼 이 영화는 곳곳을 지혜롭게 비워두며 여백을 만든다. 이런 방식을 통해 영화는 옷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는 에이코처럼, 외로워지지 않으려 발버둥치지만 결국엔 고독을 숭배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운명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남녀 배우 잇세 오가타와 미야자와 리에는 토니와 그의 아버지, 에이코와 히사코 역을 1인 2역으로 맡았다. 이는 두 존재의 연속성보다는, 오히려 두 존재간의 회복할 수 없는 단절감을 부각시키는 절묘한 장치다. 22일 개봉. 등급 미정.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