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영화방
올 베니스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쉬커 감독의 영화 ‘칠검(七劍)’에서는 칼이 주인공이다. 사람보다는, 기둥을 베고 강철을 자르는 검들이 뿜어내는 무협언어가 더 시선을 잡아끄는 영화라는 의미다.
중국 한국 홍콩 합작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동방불패’ ‘영웅본색’ ‘황비홍’ ‘신용문객잔’ 등 액션 히트작을 제작하거나 연출한 거장의 작품답게 무협액션 장면에서 자신감이 느껴진다. ‘칠검’에서 보여 주는 무협액션은 ‘와호장룡’ ‘영웅’과는 색깔이 다르다. 그림엽서같이 예쁘고 세련된 액션, 마치 춤추는 듯 가볍고 부드러운 몸짓이 아니다. 분칠하지 않은 맨 얼굴의 액션, 컴퓨터 그래픽이나 와이어 액션을 절제한 거칠고 투박한 리얼 액션에 가깝다. 지나친 특수효과에 싫증난 관객이라면 새로운 무협액션을 보는 맛을 느낄 수 있겠다.
원작은 중국의 무협소설가 양우생의 ‘칠검하천산’. 영화의 구도 자체는 서부영화처럼 단순하다. 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려는 악당들과 마을을 지키려는 7인의 검객의 한판 대결이 펼쳐지는 것.
작품 배경은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선 17세기. 나라에서는 반란의 싹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무술 연마와 무기 소지를 금하는 금무령(禁武令)을 내리고 무술을 연마하는 사람들의 머리에 현상금을 내건다. 이 돈을 노린 명나라 장군 출신의 ‘풍화연성’은 부하들을 이끌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아이부터 노인까지 마구잡이 살육을 일삼는다. 그의 다음 표적은 무장마을. 풍화연성에 맞서기 위해 천산에 내려온 7명의 무사가 힘을 합친다.
이들이 가진 검은 제각기 사연과 특장이 있다. 다른 검을 자를 수 있는 유룡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만든 청간검, 검이 일으키는 바람만으로도 사람이 다칠 수 있는 막문검, 두 손으로 다뤄야만 하는 경성검 등. 이 검을 든 7명의 무사는 ‘칠검’으로 불린다.
영화가 이들의 무협액션을 보여 주는 데 치중한 만큼 이야기는 허술하고 캐릭터는 허약하다. 양차이니, 리밍, 전쯔단, 쑨훙레이, 김소연 등이 주연으로 나오지만 특별한 인상을 남기진 못한다. 그나마 코믹한 행동에 도통한 듯한 말을 내뱉는 허무적인 캐릭터의 풍화연성(쑨훙레이)이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김소연은 조선에서 끌려온 노예 역을 맡아 우리말로 대사를 하는데 이 장면들이 영화에 녹아들기보다 겉도는 느낌을 준다.
칼로 사지가 베이고, 창과 화살이 몸통을 뚫고, 머리가 잘린 사람들 등 스크린에는 온통 유혈이 낭자하다. 영화 도입부에 등장하는 수려한 천산의 풍경, 눈 덮인 산을 맨발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무사들, 그 위로 떨어지는 운석 등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시키는 듯한 초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화면으로 눈길을 끈다. 영화 끝부분, 막다른 골목에서 좁은 벽을 타고 두 무사가 대결하는 장면이 볼거리. 29일 개봉, 15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