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일 국무회의를 열고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에 대한 주세율을 현행 72%에서 90%로 인상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주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인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소주세 인상에 반대한다는 기존 방침을 즉각 재확인했다. 이처럼 여당마저 반대하는 형국이어서 소주세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지 현재로서는 불투명하다. 정부안대로라면 소주의 병당 출고 가격은 지금보다 97원 오른다. 하지만 음식점에서 마시는 소주 가격은 1000원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소주세 올리는 것이 옳을까, 그를까.》
▼찬성…과음문화 바꿀 기회▼
적정한 수준의 음주는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사교의 촉매제도 된다. 그중에서도 소주는 저렴한 가격으로 인해 서민이 즐겨 마시면서 삶의 시름을 잊는 술임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소주와 위스키 등 주세율 인상안에 대해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 나서서 반대하고 있다. 소주가 서민주이고 불경기라는 점 그리고 부족한 세수는 예산 절감으로 대응하라는 논리다.
이 같은 주장이 일견 일리가 있지만 날로 악화되는 음주의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성인 1인당 소주 등 고알코올주 소비는 세계 4위에 이르고 있다. 최근 여성과 청소년의 음주 비율은 1986년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해 2003년 50%를 넘어섰다. 또 한 번에 소주 1병(맥주 4병) 이상 마시는 사람도 1999년 성인 10명당 3명에서 2003년 4명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국제보건기구(WHO) 기준의 알코올 의존자는 5명당 1명, 알코올 중독자는 약 220만 명에 이른다.
이 같은 음주 및 과음인구의 확산은 불가피하게 각종 사회적 폐해를 유발한다. 2003년 음주로 인한 사회적 총비용은 약 17조 원, 음주자 본인이 아닌 제3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최소 5조∼7조 원으로 추정된다. 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각각 약 1100명, 5만5000명에 이르러 자동차 1대당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음주운전 단속은 연간 약 49만 건, 음주소란 단속은 7만4000건 등 경찰이 음주 관련 업무에 시달리며 본연의 치안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과음으로 인한 사회적 폐해가 날로 늘어나는 이유 중에 소주 한 병 가격이 1100원(평균 소매가격)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수입생수보다 더 싼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에도 소주와 비견되는 서민주가 있다. 하지만 위스키와 비교할 때 이들 제품의 가격은 평균 4분의 1 수준인 반면 소주가격은 약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소주 세금이 낮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하여 다른 술에도 세금이 낮게 부과되고 있다.
물론 과음으로 인한 부작용이 모두 소주 때문은 아니며 이를 해결하려면 주세율 정책 이외에 각종 규제와 교육 등 다양한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5조∼7조 원에 이르는 비용을 음주자가 아닌 제3자가 부당하게 지불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원인자 부담 원칙에서 소주를 포함한 주류 전반의 세율 인상이 필요하다.
소주에 대한 국민정서 때문에 저율 과세되고 이에 따라 전반적인 술 가격이 낮아 음주인구의 확산, 과음과 폭주가 성행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사회적 비용 해소’라는 주세율 정책 본연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술을 강권하는 대신 취중 실수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이는 음주의 자유를 존중하는 대신 숙취 후 행위에 엄격한 선진국과 반대인 문화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청소년 음주비율이 55%에 이르는 현 시점에서 기성세대가 소주 1병당 100원의 세금을 덜 내기 위해 우리 청소년들이 잘못된 음주문화를 답습하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가. 청소년의 경우 음주습관이 아직 정착되지 않고 가격에 민감하기 때문에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더욱 중요하다.
장근호 홍익대교수·경영학
▼반대…서민가계 압박가중▼
정부의 소주 등 주세법 개정안대로라면 2006년에는 소주 한 병의 주세가 맥주와 비슷하게 되고, 2007년부터는 소주 주세가 더 많아지게 된다. 소주가 맥주에 비해 ‘서민의 술’에 속한다면 이번 주세율 개편안은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는 조세 부담의 기본 원칙을 거스르는 셈이다.
정부가 개정안을 의결한 것은 국민 건강 증진이 큰 명분이었다. 하지만 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과 질환 진단 기준에 의하면 고도주(高度酒) 소비가 알코올 중독의 원인으로 간주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상승의 책임을 고도주에 전적으로 돌리는 주장 또한 근거가 희박하다. 음주 사고의 원인인 만취 상태는 음주자의 체질, 신체 상태, 음주 시 주변 분위기에 따라 맥주 등 저도주의 다량 음주에 의해서도 발생한다. 따라서 ‘고도주 때문에 국민 건강이 훼손되고 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으므로 이를 억제하여야 한다’는 단순논리는 사실과 다른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음주의 사회적 비용 감소를 위한 실효성 있는 해결책 수립에 혼선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특히 알코올 도수 21%가 주종인 소주를 고도주로 취급하는 것은 잘못된 고정관념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포도주의 경우 도수가 22%를 초과할 때에만 증류주와 세율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우리와 음주 문화가 비슷한 일본에서도 소주를 고도주로 분류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도수 21%인 소주 한 병의 주세가 도수 4%인 맥주 한 병의 주세보다 낮다. 정부의 개편안은 선진적인 주세율 체계 구축과도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전통과 문화가 다르듯이 제각기 나라를 대표하는 국주를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의 와인, 독일의 맥주, 영국의 위스키 등은 정부의 보호 육성과 자국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소주를 ‘한국의 전통주’라고 정의하기는 힘들겠지만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로 많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술이다. 소주 한 잔에 담겨 있는 서민적 흥취, 소주만이 가질 수 있는 대중문화적 가치 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소주산업의 경우 각 지역을 기반으로 10개사가 1도(道) 1사(社)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도한 주세율 적용으로 소주 판매가 줄어들 경우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경제가 침체될 우려가 있다. 이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목표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기 침체로 인한 세입 부족분을 소주 등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에 부담 지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며 씀씀이를 줄이고 있는 서민들의 지갑을 억지로 열어 나라살림을 꾸리려 하기보다는, 시장친화적인 경제 환경 조성을 통해 투자 및 소비를 진작함으로써 경제 성장과 세수 증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소주 세율 인상안을 철회하는 것이 서민생활 안정과 조세 형평 제고를 이루는 길이며 ‘더불어 잘사는 사회’ 건설이라는 국가적 사회적 목표를 훼손하지 않는 방안이 될 것이다.
이상호 세종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