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뉴욕을 출발하는 순간, 설치미술가 전수천(58·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씨는 눈물을 글썽였다. 흰 천을 뒤집어씌운 열차로 미국 대륙을 횡단하자는 생각을 한 게 무려 13년 전. 천신만고 끝에 정부(문화관광부 3억 원)와 기업(현대자동차 1억5000만 원, 삼성전자 3000만 원)의 지원을 받아 상상을 실천으로 옮겼으니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작가의 집념과 열정에 열차와 선로를 빌려 준 미국 철도회사 암트랙 관계자들도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찬탄했다.
21일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함으로써 7박 8일의 대장정을 마친 미 대륙 횡단 철도 프로젝트인 ‘움직이는 선(線) 드로잉’. 파격적인 상상을 현실에 구현했다는 점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박제화되기 일쑤인 미술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미술(혹은 예술)을 삶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었다.
우선 ‘열차를 구르게 하여 대륙을 횡단한다’는 점에만 너무 자족한 나머지 열차가 움직이는 7박 8일의 ‘과정’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행사기간 중 딱 한 번 미국의 미술평론가들과 한국에서 간 탑승객들이 참여하는 심포지엄이 열렸지만, 너무 전문적이고 고담준론식이어서 행사의 의미를 공유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나머지 시간 동안 탑승객들은 그저 지나가는 창밖 풍경에 관심을 돌리는 정도였다. 바깥 풍경을 미국의 대륙을 배경으로 했을 뿐, 열차 안 풍경은 한국인들만의 잔치였다.
주요 도시마다 정차를 했지만 하다못해 열차 밖으로 나가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나눠 주는 등의 기본적인 홍보조차 없었다. 미국인들은 흰 천을 덮어쓴 열차를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정작 미국에선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다.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정부 지원을 받았지만 정작 열차에 동승한 초청자 30여 명의 면면은 그런 의미를 살리기엔 부족했다. 광복 60주년의 의미를 공유하는 취지의 행사도 없었다.
물론 이번 행사는 한 번 치러지고 나면 그뿐인, 순간의 미학이 핵심인 퍼포먼스였다. 따라서 열차를 움직이게 하는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소통’ 역시 중요한 과제였음에도 이를 너무 소홀히 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로스앤젤레스=허문명 기자 ange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