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학자의 다음과 같은 상상을 듣고 무릎을 친 적이 있다.
지금 저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은 나무를 건드린 빛을 눈이 포착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 나무를 비추었다가 저 아득한 우주로 뿔뿔이 흩어져 나간 빛이 우주 어느 구석에는 차곡차곡 쌓여 있다고 한다. 그 빛을 다시 불러오면 아득한 옛날, 나무 씨앗이 꼼지락꼼지락 땅을 뚫고 나오는 모습, 나무 밑을 지나가는 옛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의 옛날 일도 손에 보듯 훤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상에서 빛의 속도는 뛰어넘을 수 없는 절대 속도이기에 이 공상이 현실에서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든 그 참신한 상상력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태양이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의 근원이라지만 제 아무리 강렬해도 인간의 두뇌 속은 점령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머리에서 생산된 생각은 빛의 도움 없이도 시간을 거스를 수가 있는 것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뉴턴이 홀로 걸어가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 그가 한 생각이 고스란히 남아 오늘의 우리가 공유할 수 있음은 그 덕분일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책은, 소리를 내자마자 없어지는 말을 영원히 보존하는 기술인 활자의 덕을 특히 톡톡히 보는 책이다. 이런 활자, 이런 책이 아니었다면 대체 세상을 뒤흔든 과학 천재들의 머리 속을 뚫고 나온 창조적 생각을 어떻게 우리가 전달받을 수 있었겠는가. ‘지식의 원전’은 ‘발견’과 ‘앎’의 순간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지식 발견의 순간을 골라 정리한 사람은 과학자가 아닌 옥스퍼드대의 한 영문학 교수다. 그는 다음의 세 가지, 즉 대중이 꼭 알아야 할 근대적 지식인지, 얼마만큼 흥미로운지, 교육을 그리 많이 받지 않은 독자도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는 글인지를 기준으로 삼아 수많은 문헌 중에서 102편의 글을 뽑아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기록에서부터 갈릴레이가 하늘을 관찰하고 쓴 글, 발명가이자 시인이었던 이래즈머스 다윈이 쓴 시, 한 알의 소금에서 우주를 들여다본 칼 세이건의 글, 원소배열표인 주기율표와 아우슈비츠에서의 인생 역정을 견딘 프리모 레비의 글까지 에세이, 시, 노트 등 다양한 형식의 과학적 지식을 담은 글들이 실려 있다.
과학 기자재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던 갈릴레이는 망원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이용하여 하늘을 관찰하려고 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망원경을 육상이나 해상에서 관측하는 데 필요한 물건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는 망원경으로 지상의 물체를 관찰하기보다는 천체를 관찰하고 싶다며 하늘로 망원경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그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는 관찰 사실들을 적어 내려간다.
과학이라면 먼저 손사래부터 치던 이들도 책 곳곳에서 그 시대에 통용되던 기존 사실들을 뒤집어 생각하며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았던 과학자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가졌던 호기심과 발견에 대한 기쁨을 그 어깨 너머로 간접적으로나마 함께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으로 얻는 셈이다.
독자들에게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 이 책은 과학부터 우선 가볍게 자기 소개를 하면서 이웃 분야로 다리 하나를 놓아준다. 그 다리 위가 많은 사람들로 무척 붐비기를 기대해 본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