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스카이’
◆바닐라 스카이〈MBC 밤 12:10〉
아직도 스페인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연출한 ‘오픈 유어 아이즈’를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어느새 ‘매트릭스’를 통해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꿈과 현실의 경계와 프로그램화된 기억. ‘오픈 유어 아이즈’는 바로 그런 문제들을 전면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작품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바닐라 스카이’는 바로 독특한 스타일과 진지한 주제의식으로 각인된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의 할리우드 리메이크 버전이다.
예상하다시피 할리우드 리메이크는 영화에서 일장일단을 드러낸다. 우선 ‘바닐라 스카이’는 할리우드의 풍부한 자원 덕분에 원작에 비해 훨씬 강렬하고 풍성해진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영화의 오프닝, 뉴욕의 거리를 헤매는 데이비드(톰 크루즈)의 악몽과 라디오 헤드의 음악은 가히 흠잡을 데 없다. 원작에 비해 훨씬 세련된 화면이나 모네의 미술작품을 인용해 제목을 ‘바닐라 스카이’로 바꾼 센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문제는 리메이크 과정에서 원작이 지녔던 독특한 분위기가 상당 부분 훼손되었다는 사실. 특히 팬터마임 연기를 통해 신비로운 여인의 이미지를 구현했던 페넬로페 크루스의 매력은 할리우드 버전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악몽 같은 현실과 진짜 악몽의 경계에 대한 영화적 질문의 에너지는 여전히 충격적이다. 영화에서처럼 현실과 환상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 지옥 같은 현실이 어딘가 불편한 음모같이 생각된다면 이 영화를 권한다. 원제 ‘Vanilla Sky’(2001년). ★★★☆(별 5개가 만점)
◆이프 온리〈KBS2 밤 11:05〉
역시 가을에는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멜로 영화가 제격이다.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지고지순한 희생, 사랑의 절대성과 같은 순도 높은 멜로가 펼쳐진다. 감동의 포인트는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애인에게 특별하고 아름다운 하루를 남겨 주고자 하는 남자의 눈물겨운 노력과 정성. 단, 가정법인 만큼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은 괄호에 넣어 두는 게 좋을 듯. 원제 ‘If Only’(2004년). ★★★
강유정·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