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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황유성]中 ‘언론탄압 금메달’ 벗어날 날은

입력 | 2005-09-26 03:06:00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 위기에 몰렸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이다. 2001년 9·11테러 직후 88%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최근 30%대로 곤두박질쳤다. 재해 지역의 처참한 모습이 실시간 방영되고 정부의 늑장 대응에 대해 언론이 신랄한 비판을 가한 것이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미국 권위지 워싱턴포스트가 13일 칼럼을 통해 ‘부시 시대의 종말’을 고한 것은 무섭기까지 하다. 이 신문은 “부시 대통령이 카트리나 피해지역을 처음 방문했던 2일로 그의 시대는 끝났다”고 무참히 선을 그었다. 집권 2기 출범 1년도 안 되는 시점에서 마치 앞으로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한 섬뜩한 글을 실은 것.

‘카트리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는 부시 대통령이 12일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내놓은 중국 공산당의 짤막한 발표를 보았다면 만감이 교차했을 법하다.

중국 공산당 직속기관으로 최고 수준의 국가기밀 보안을 담당하는 부서인 국가보밀(保密)국은 이날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에 관한 자료를 국가기밀 지정에서 해제한다”고 밝혔다. 재해방지와 구호활동, 나아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는 게 이유였다.

지금까지는 태풍이나 홍수, 지진 등 자연재해로 발생한 인명 피해는 당의 허가 없이는 보도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뒤집어보면 개혁 개방과 고도 경제성장의 이면에 가려 있던 중국 언론의 현주소라는 ‘국가기밀’을 무심결에 ‘해제’한 것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부로서는 올해 대만 문제에 관한 한 ‘득의(得意)의 한 해’라 할 만하다. 4∼7월 롄잔(連戰) 국민당 주석을 비롯한 대만의 야 3당 지도자를 잇달아 불러들여 양안(兩岸) 관계의 주도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이 19일부터 12일간 대만의 리아오(李敖·70) 무소속 입법위원(국회의원)을 초청한 것은 양안 평화공세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것이다.

헤이룽장(黑龍江) 성 하얼빈(哈爾濱) 출신의 실향민으로 노벨문학상 추천 작가이자 2000년 총통선거에도 출마한 리 위원은 그동안 대만 독립파를 공격하는 데 앞장서 중국 당국이 선호해 온 인물이다. ‘자기편’이라 여겼던 그가 21일 베이징(北京)대 강연에서 언론 자유를 거론하며 공산당의 아킬레스힘줄을 건드렸다.

“언론 자유를 쟁취하는 것은 (탁구에서) 에지볼(edge ball)을 받아치는 것과 같다. 기교가 있어야 한다.”

그는 나아가 “항우(項羽)나 (명말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李自成)은 군대가 있어 무력혁명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 언론 자유 투쟁을 하려 해도 결코 통치자의 기관총과 탱크를 이길 수 없다”며 “멍청하게 정부의 무력 진압을 부르지 말고 총명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학생들을 선동하는 듯한 말도 서슴지 않았다.

리 위원으로서는 ‘하나의 중국’도 좋지만 언론 자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경고를 중국 측에 전하려 했을 것이다. 그의 강연 내용은 중국 언론에 일절 보도되지 않았다.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한 중국 공산당의 지시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자연재해 사망자 수까지 국가기밀로 지정한 나라이니 애당초 후속 보도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을 것이다. 하기야 중국은 지난해 8월 아테네 올림픽 때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RSF)’로부터 ‘언론탄압 금메달’까지 받은 바 있으니….

황유성 베이징특파원 ys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