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국립극장장이 되었을 때, 공직생활 30년이 되는 한 선배가 “하루에 5분만이라도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 보라”는 충고를 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오랫동안 익숙하게 살아 온 예술가의 생활이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는지라 실업 상태일 때는 하고 싶은 일들을 내 맘대로 계획 세우고 내 마음대로 시간을 활용하며 하루 종일 ‘멍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장장으로서 빈틈없이 꽉 짜여진 생활을 하다 보니 정말 하루에 5분도 멍할 새가 없었다. 1년쯤 지난 후 나는 내 영혼이 고갈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는데, 그 무렵에 읽은 책이 ‘호모 루덴스’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멍하게 지낸다는 것, 즉 창조적 놀이 정신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되었고, 그 후로 가끔씩 ‘멍한’ 상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자인 요한 호이징가는 모든 문화 현상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는다. 그는 자신이 탐구해 온 예술사와 종교사 등 인류 문명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동원하여 인류의 고대 문화를 놀이적 관점에서 고찰한다.
“놀이는 문화보다 오래되었다. 놀이는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며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언제나 함께해 왔고 다양하게 발전했다. 인간은 생각하는 인간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인 동시에 유희의 인간인 호모 루덴스(Homo Ludens)였다”고 주장하는 호이징가가 해석하는 놀이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일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공정한 규칙에 따라 경쟁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문화와 놀이가 분리되고 단순히 놀기 위한 놀이는 퇴폐적인 것으로 죄악시되기 시작했다. 이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놀이마저도 삶과 유리된 채 상업성으로 점철되고, 놀이가 가졌던 본래의 건강성을 상실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줄기차게 주장하는 것은 고대의 신성하고 삶이 충만한 놀이 정신의 회복이다. 놀이에 따르고 놀이에 승복하며 놀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문명을 빛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가 이 책을 쓴 1938년 무렵은 세계적으로 전운이 감돌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이 책에서 정치적인 주제는 극히 필요한 경우에만 조금씩 다루고 있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네덜란드를 침략한 독일군의 점령 치하에서 독일을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2년에 석방되어 가족과의 면회도 금지된 채 겔더란트의 시골집에서 1945년에 사망했다.
인류의 건강한 문화적 삶을 위해 혼신을 다해 탐구한 학자가 정작 자신의 삶은 반문화적이며 억압적인 전쟁의 희생물로 바쳐야 했던 현실이 참으로 역설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인간의 존재와 행위 양식의 본질 규명에 새로이 도전한 ‘호모 루덴스’는 진정한 문명을 건설하려는 저자의 소명의식 속에서 탄생된 기념비적인 저서로서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김명곤 국립극장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