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의 음을 조율하는 ‘보이싱’ 작업을 하고 있는 무네타카 요코타 씨.
“오르간 안으로 들어가 보신 적 있으신가요?”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크누아(KNUA)홀에서 파이프 오르간 설치작업을 벌이고 있는 일본인 제작자 무네타카 요코타(53) 씨는 오르간 아래쪽에 있는 문을 열어 주며 물었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마치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종탑처럼 좁고 기다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미로가 나타났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니 마치 죽순처럼 빼곡히 꽂혀 있는 파이프들!
길이가 5m가 넘는 것부터 15mm짜리 초소형 파이프까지. 오르간 뒤쪽에는 무려 2179개의 파이프들이 촘촘히 설치돼 있었다. 무네타카 씨는 “밖으로 보이는 파이프들은 그야말로 장식품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파이프 오르간은 공연장에 따라 크기나 모양, 소리가 모두 다르게 설계되고 설치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스웨덴 예테보리 오르간 아트센터 ‘고아트(GOart)’에서 파견된 오르간 제작자 무네타카 씨는 6월 중순 파이프들의 음색을 조율하는 ‘보이싱(Voicing)’ 작업에 들어가 12월에 모든 작업을 끝낼 예정이다. 그는 17, 18세기 북부와 중부 독일의 옛 오르간을 복원하는 전문가. 550석 규모 크누아홀의 오르간을 제작하기 위해 그는 1706년 독일 베를린 샬로텐부르크성에 있던 슈니트거의 오르간을 모델로 삼아 4년을 매달렸다.
나무를 붙이는 풀도 동물 가죽과 생선뼈로 만든 것을 사용했으며, 연장과 열쇠, 자물쇠, 못 등도 모두 17세기 수공예 방식으로 제작했다. 아울러 모래 위에 납과 주석의 합금을 부어서 파이프를 만드는 ‘샌드 캐스팅’ 방식을 재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방법은 파이프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거칠지만 소리에는 큰 차이를 가져온다. 파이프에 공기를 전달하는 송풍장치도 전동 모터 외에 사람이 발로 밟는 ‘풀무’를 만들어 놓았다. 무네타카 씨는 “전깃불이 나가도 촛불을 켜놓고 콘서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국내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된 곳은 100여 곳. 그러나 세종문화회관을 제외하면 명동성당 등 교회나 성당이 대부분이다. 음악계에서는 서울 예술의 전당 음악당에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아쉬워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오자경(오르간) 교수는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물론 현대의 많은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작품에는 오르간 연주가 필요하다”며 “대형공연장에는 외국처럼 파이프 오르간이 꼭 설치돼 제대로 된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