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회장은 29일 본보와의 단독인터뷰에서 “앞으로 영화뿐 아니라 모바일게임, 온라인게임, 드라마, 뮤지컬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제공 대성그룹
“그때는 돈을 쓸어 담았다고 합디다. 1950, 60년대는 사람들이 우리 연탄만 썼으니까요. 당시 가마니에 한가득씩 돈을 담아 갖고 가면 우리가 거래한 제일은행 직원들이 옷이 시커멓게 된다고 싫어했대요.”
1947년 국내 첫 연탄제조업체인 대성산업공사로 출발한 대성그룹.
29일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대성그룹 회장실에서 만난 김영훈(金英薰·53) 회장은 “당시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사업다각화에 신경을 써야 했다”고 말했다.
“1960년대에 주위에서 아버님(고 김수근·金壽根 명예회장)에게 ‘미국에서는 연탄은 사양산업이니 반도체에 투자하라’고 하셨대요. 그런데 아버님께서 ‘난 현금장사가 좋아’라며 거절했죠. 그때 투자했으면 지금 삼성의 반도체사업 규모만큼 컸을 거예요.”
2001년 대성그룹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김 회장이 문화산업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사업다각화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지난해 매출액 4965억 규모인 대성그룹은 대구도시가스, 경북도시가스 등 15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에너지 전문 기업.
하지만 2003년부터 계열사인 바이넥스트창업투자를 통해 100억 원 규모의 엔터테인먼트 펀드를 조성하여 ‘올드보이’ ‘말아톤’ ‘범죄의 재구성’ 등에 투자하며 영화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최근 800만 관객을 돌파한 ‘웰컴 투 동막골’에도 5억 원가량을 투자했다.
보통 영화 한 편 제작비의 10∼20%를 투자하고 있는 바이넥스트창업투자는 25% 정도의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다고.
김 회장이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관심이 많은 것은 그가 영화광인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틀에 한번 꼴로 영화를 봅니다. 아마 지금까지 본 영화가 수천 편은 될 겁니다.”
대성그룹이 있는 동덕빌딩 지하 3층 서고(書庫)에는 그가 모은 영화 DVD타이틀과 비디오테이프 6000여 개와 미국 유학시절 읽은 각종 서적 6000여 권이 있다. 대성그룹 직원이면 누구나 책과 DVD를 빌려 볼 수 있다.
영화 투자 가운데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은 조승우가 주연한 ‘말아톤’의 성공.
“자폐아 이야기라고 다들 투자를 꺼리더군요. 시나리오를 보고 내용이 좋아 제작비 30억 원 가운데 10억 원을 댔죠. 영화가 성공해 100%가 넘는 수익을 냈습니다. 흐뭇하더군요.”
대성그룹은 올해 3월 영화 ‘반지의 제왕’ 제작 일부를 담당한 뉴질랜드의 파크로드포스트사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전략적인 제휴를 통해 세계 영화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국내에서 아예 영화제작사 하나를 만들 생각입니다. 반지의 제왕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과 영화 공동제작도 추진하고 있어요.”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문화산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김 회장은 9월 국내 민간기업인 가운데 처음으로 세계에너지협의회(WEC) 부회장에 선출되는 등 에너지와 문화 산업 양쪽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김 회장은 대성그룹 창업주인 고 김수근 명예회장의 3남. 국내에서 주목받는 여성 CEO 가운데 한 명인 김성주(金聖珠) 성주인터내셔널(패션업체) 대표는 그의 동생이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