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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프리즘]피셔 독일 前외무 “달리기는 행복 호르몬”

입력 | 2005-09-30 03:15:00

2000년 11월 1일 한국을 방문한 요슈카 피셔 당시 독일 외무장관(가운데)이 숙소인 남산 하얏트호텔 주변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1996년 48세. 몸무게 112kg(키 181cm) : 먹는 게 취미. 일어나자마자 구운 감자를 먹고 아침 식사는 소시지, 햄, 치즈, 달걀프라이, 베이컨, 버터와 잼 바른 빵. 점심 전 간식으로 소시지를 먹은 뒤 점심은 푸짐하게 식사. 조금 뒤 다시 간식으로 감자 튀김을 먹고 저녁엔 돼지 족발, 소갈비로 배를 채움. 밤늦게까지 회의와 일에 파묻힘. 그 뒤엔 취할 때까지 마시면서 일과 정치 이야기. 2∼3시간 취침. 모든 에너지를 정치적 성공 위해 바침. ‘인간나무통’ ‘비곗덩어리’로 불림. 식식거리는 숨소리. 잠잘 땐 가슴에 찌르는 듯한 통증. 결국 13년 동안 같이 산 3번째 아내가 이혼 선언. “한심한 인간, 너 이제 이 몸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니?”라며 장탄식.

1998년 50세. 몸무게 75kg : 달리기가 취미. 일어나자마자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를 한 뒤 매일 10km 이상 달림. 아침은 콘플레이크 뮤슬리(시리얼의 일종) 오렌지나 포도주스를 들고 점심은 채소에 과일. 저녁은 생선 샐러드 파스타로 식사. 술 육류 설탕 절대 금지. 처음 팔굽혀펴기를 할 때는 몇 개 못하고 엎어짐. 첫날 500m를 달리는데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아 기다시피 함. 하지만 ‘한 걸음이라도 매일 더 달리겠다’는 원칙 지킴. 6개월 만에 16km를 달렸고 18개월 만에 풀코스를 3시간 41분 36초로 완주.

2005년 5월 57세. 몸무게 다시 112kg: 22세 연하인 5번째 부인과 베를린의 최고급 레스토랑 들락거림. 언론들은 ‘요요현상’(단식과 폭식을 반복하며 몸무게가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을 빗대 ‘요요 요슈카’라고 비아냥. 그는 “9월 총선 유세를 위해 달리기로 최소 20kg 빼겠다”고 선언. 그러나 시중에선 그의 책 ‘나 자신을 찾기 위한 오래 달리기’(국내에는 나는 달린다’로 소개) 후속으로 ‘내 주변(몸 둘레) 오래 달리기’라는 속편이 나올 것이라고 풍자.

요슈카 피셔(57·녹색당) 전 독일 외무장관. 푸줏간집 아들로 태어나 모든 것을 길거리에서 배웠다. 고교 중퇴. 노숙자, 빈집 점거 농성자, 우편배달부, 거리 화가, 택시 운전사, 공장 노동자(오펠 자동차공장에서 파업주동자로 해고), 고급포르노그래피 번역자, 직업혁명가 등 안 해본 게 없다. 그는 원고 없이 연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독일 정치인 중 하나다. 1999년엔 ‘올해의 본회의 연설’ 수상자였다. 검은 선글라스에 청바지 티셔츠 차림의 첫 의정 연설은 독일을 떠들썩하게 했다. “허락하신다면 의장님! 당신 정말 똥개요”라는 발언으로 본회의장 출석 금지를 받기도 했다.

그가 20일 녹색당 총선 꼴찌 책임을 지고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20여 년 전 난 정치 권력과 개인의 자유를 맞바꿨다. 이제 나 자신의 자유를 되찾고 싶다.”

그는 다시 달릴 것이다. 그는 이미 ‘나는 달린다’에서 토로했다. ‘개인 욕망’의 부질없음과 허망함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이 ‘숨.막.히.는’ 강호 세상을.

“그동안 나 자신과 정력을 쓸데없는 데 낭비했다. 난 달리기를 통해 비로소 ‘내적 개조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의 부처를 만나기 위해 달린다. 달리기는 내게 ‘생체아편’이고 ‘행복호르몬’이며 ‘자아여행’이다. 달리면서 고독과 평온함과 명상을 즐긴다.”

김화성 기자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