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통교, 모전교, 정조대왕능행반차도 등 볼거리가 풍부한 청계천. 그러나 청계천에 사람 냄새가 배게 하고 정겨움을 더한 것은 바로 이름도 없는 작은 징검다리들이다.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좀 더 잘 어울리게 하는 것. 최창수 반장이 쌓은 하나하나의 돌은 이런 의미를 지닌다. 안철민 기자
“청계천? 수천, 수만 개의 돌이 쌓인 곳이죠. 하하하.”
영훈조경 최창수(40) 조경사업반장. 그에게 있어 청계천은 단순히 물이 흐르는 곳이 아니다. 수천, 수만 개의 돌이 쌓인 곳. 그리고 그는 그 돌을 하나하나 자리 잡고 쌓는 일을 했다.
역사적 사업이라느니, 도심의 생태계를 복원했느니 하는 높으신 분들의 겉치레 말을 그는 잘 모른다. 그에게는 해야 할 일이었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 삶의 현장이었을 뿐.
그러나 청계천에 살을 부비고 땀방울을 흘리며 인간의 살 냄새를 배게 한 것은 최 씨와 같은 수많은 현장 근로자들이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수많은 찬사와 스포트라이트는 모두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과 시 간부들, 건설사 고위층에게 쏟아질 것이다. 비록 공사 관계자로 개막식 초청은 받았지만 그에게까지 돌아갈 칭찬과 찬사는 별로 많지 않아 보인다.
“이 공사에 참여한 모든 분들께 감사와 공을 돌립니다”라는 말 정도가 고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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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로 된 돌 찾는데 애 먹어
그는 조경석을 쌓는 일을 한다. 청계광장 앞 모전교∼예지동 배오개다리까지 청계천을 따라 하천 변으로 쭉 놓인 조경석과 징검다리는 그의 작품이다. ‘그까짓것 그냥 놓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천만의 말씀.
많게는 2t까지 나가는 하나하나의 돌을 자연스럽게 배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중간 돌은 큰 것으로, 양옆에는 그보다 절반 정도 작은 돌을 배열해야 해요. 그게 높이 3단 전체 구간에서 서로 어울려야죠.”
다 똑같은 돌로 보이지만 하천 변에는 온양자연석, 보령석, 포천화강석, 산석 등 각종 돌이 사용됐다.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란 말도 있지만 사실은 제대로 된 ‘돌’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돌을 구해 주는 업체는 따로 있지만 1∼2t이나 되는 큰 돌을, 그것도 어느 정도 모양에 맞춰 구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
“흔한 징검다리 돌 같지만 아래쪽은 물살을 견딜 수 있도록 넓은 모양으로, 중간은 흐름을 방해하지 않게 가운데가 들어가야 하죠. 또 물이 오는 방향은 어느 정도 모가 나서 물살을 헤치게 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윗부분은 평평해야 하니까요. 꼭 장구 같은 모양이어야 하는데 그런 돌이 어디 흔한가요. ‘깎으면 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돌을 가공하는 데는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거든요.”
○ 이젠 소주 한잔 해야죠
지난해 3월부터 청계천에서 조경공사를 했으니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먼지와 콘크리트, 인부들의 고함과 차량소리로 어수선했던 현장은 어느새 깨끗한 물이 흐르는 멋진 하천으로 탈바꿈했다.
“애정도 있고, 애증도 있고…. 하지만 나중에 꼭 내 아내와 내 자식과 함께 오고 싶은 곳이죠.”
공사는 다 끝났지만 그의 손톱 밑에는 여전히 새까만 흙이 끼어 있다. 아직도 내심 미진하게 느끼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한다고 했는데 좀 아쉬운 부분도 있고…. 돌을 만지다 보니 손이야 항상 이 모양이죠. 하하하.”
그에게 청계천은 돌들의 장소. 사람들은 물부터 보지만 그는 돌부터 본다.
“수천 개가 넘는 큰 돌 하나하나마다 놓을 당시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이제 다 끝났으니 소주나 한잔 해야죠.”
가을 도심을 유유히 흘러가는 청계천. 아무도 주목하지는 않지만 그와 같은 현장 근로자들의 땀이 없었다면 청계천은 오늘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