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는 피부 한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고 셰익스피어가 말했지만 여성의 외모에 관한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외모에 대한 표현은 ‘자연스럽다’ ‘예쁘다’ ‘섹시하다’ ‘귀엽다’ ‘우아하다’ 등 다양하다.
그렇다면 한국의 남녀들은 여자의 외모를 표현할 때 어떤 말을 가장 많이 쓸까. 동아일보 위크엔드는 여론조사회사인 나우앤퓨쳐(www.nownfuture.co.kr·전 아이클릭)와 함께 20∼40대 남녀 각각 500명에게 인터넷 설문을 던졌다. 남자에게는 여자의 외모를, 여자에게는 자신의 외모를 표현할 때 어떤 말을 가장 많이 쓰는가를 물었다.
조사 결과 여자는 ‘자연스럽다’를, 남자는 ‘예쁘다’를 가장 많이 꼽았다. 여기에는 어떤 심리가 담겨 있을까. 성형외과 전문의인 홍석훈(45) 한피부과 원장,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정찬호(39) 마음누리 원장, 화장품업체 ‘엔프라니’의 김영진(28·여) 홍보파트장에게 설문 결과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 여성들은 “자연미가 최고야.”
20∼40대 여성들은 자신의 외모를 표현하는 데 가장 많이 쓰는 말로 ‘자연스럽다(41.2%)’를 꼽았다. 특히 40대(48.8%)와 30대(44.9%)는 2명 중 1명꼴로 ‘자연스럽다’를 선호했다.
이에 대해 정 원장은 “자연스럽다가 여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은 이 말의 이중적인 의미 때문”이라며 “자연스럽다는 말은 아름답고 개성적이란 뜻을 함께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메이커업 트렌드도 ‘자연미’를 강조하는 추세다. 전체적으로 색조화장품보다 기초화장품이 강세를 띠고 자연스럽고 ‘화장하지 않은 듯한’ 콘셉트의 제품이 인기를 끈다. 김 홍보파트장은 “남자 친구가 봤을 때 화장을 안 한 듯하면서도 잡티 없이 깨끗하고 뽀얀 분위기를 내는 느낌을 여긴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자연스럽다’에 이어 ‘귀엽다’(22.8%) ‘예쁘다’(19.2%) ‘우아하다’ ‘진짜다’ ‘섹시하다’의 순으로 꼽았다. 특히 20대 여성들은 ‘자연스럽다’(29.9%)보다 ‘귀엽다’(37.1%)를 더 많이 꼽았다. ‘귀엽다’는 ‘자연스럽다’와 함께 자신의 외모를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며 ‘예쁘다’ ‘섹시하다’ 등 직접적이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여성들은 ‘우아하다(6.6%)’보다 ‘귀엽다(22.8%)’를 3배 이상 높게 꼽은 점도 주목할 부분. 김 홍보파트장은 “우아하다는 언어적 특성상 연륜이 느껴지는 말”이라면서 “어리게 보이고자 하는 것은 여성들의 욕망”이라고 지적했다.
○ “성형도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한국 여성의 외모에 대한 불만은 심각한 수준. 체형관리업체 마리프랑스 바디라인이 최근 중국 싱가포르 태국 등 아시아 6개국에서 각각 20∼59세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여성의 외모 불만족도는 78.7%로 말레이시아 여성(26.5%)의 약 3배에 이른다.
이런 결과로 인해 한국에서 성형 수술은 보편화되고 있으며 자연미를 강조하는 추세다. 눈을 크게 만들되 쌍꺼풀은 연하게, 코는 조금만 높이고 콧방울을 줄이는 식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성형이 최근의 경향이다. 홍 원장은 “여성들은 ‘수술한 티가 나지 않게 만들어 달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나우앤퓨쳐’의 외모 표현 설문 조사에서 여성 응답자의 5.4%가 ‘진짜다’를 응답한 것도 ‘성형 미인’에 대한 불신을 반영한 것이다. 정 원장은 “‘진짜다’처럼 심리조사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응답은 적더라도 큰 의미를 지닌다”며 “자연스럽다에 이런 의미가 다소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5%도 놀랍다”고 말했다.
○ 단순한 남성들은 “예쁘다”가 가장 많아
여성의 외모에 대해 남성들은 ‘예쁘다’(70%)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홍보파트장은 “외모 표현에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에 비해 남성들은 전체 분위기를 표현하는 경향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경향은 남성들이 미에 대한 감각이나 표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홍 원장은 “남성들은 여성의 외모를 ‘예쁘거나 안 예쁘거나’로 단순하게 보며 복합적인 평가 기준을 가진 여성과 대조적”이라고 말했다.
○ ‘섹시하다’ 가장 적어
연예계에선 ‘섹시 코드’를 내세우고 있으나 이번 조사에서 ‘섹시하다’는 응답은 남성(3.6%)과 여성(6.6%) 모두 낮게 나왔다. 정 원장은 “여성은 섹시하다는 말을 ‘성적 비하’로 느끼는 데다 남성도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회피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정 원장은 “20대와 40대 여성이 각각 ‘섹시하다’를 4.8%와 2.4%로 응답한 반면 30대 여성은 7.2%가 선택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에서 ‘섹시하다’는 표현은 386세대가 본격 쓰기 시작한 말로 이 세대에 속하는 여성이 다른 세대보다 거부감을 덜 느낀다는 분석이다.
반면 남성은 20대(3.6%)에 비해 30, 40대가 각각 8.4%로 응답해, 연령이 높을수록 섹시하다는 말에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