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까지 1년간 프랑스 파리에서 생활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나 같은 건축보존주의자에게는 참으로 부러운 곳이었다. 발 가는 곳마다 거의 100년 된 건물들이 즐비했다. 시내 한복판에 이르면 1850년대의 것들도 수두룩했다. 시내가 모두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 건축가는 물론이고 시민들도 그 집들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오래된 건축물이 좀 불편하더라도 때로는 값지게 여기며 때로는 체념하며(?) 그냥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방에 비가 들이쳐도 계단이 삐걱거려도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간판은 가능한 한 작게, 건축물이 가리지 않게 붙이는 정도이다. 다만 쇼윈도만큼은 정성을 다해 치장한다. 거리는 그래서 더욱더 아름다워진다. 길을 걷는 사람들은 그에 푹 빠져 들어간다. 오래됐지만 살아있는 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가. 거리에 역사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거리는 역사를 거의 다 밀어붙여 남은 것이 없다. 어느 도시나 매한가지로 도토리 키재기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 목수가 다 사라져 버린 탓이다. 조선조 말, 소위 전통 목수는 전부 생업 목수로 길바꿈을 했다. 집 장사로 나선 것이다. 어설픈 사회 풍조는 건축물을 두부 자르듯 짓기 시작했다. 싸게 빨리 짓는 데는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전통 목수는 천대받고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던 것이다.
사회 대접이 그런데도 그나마 몇 사람이 전통 건축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긴 얘기 할 필요도 없이 그들 스스로 그 어려운 명맥을 이어 온 것이다. 깊은 산속에서 토종 소나무를 고르고, 과거 역사의 현장에서 켜고 짜서 틀을 잡아 온 것이다. 거기에 기와를 이고 단청을 해 우리에게 남겨 준 것이다.
나는 목수를 존경한다. 그중 상징적으로 신응수(申鷹秀·63)를 먼저 꼽는다. 이 책은 그가 직접 말하는 전통 건축 이야기, 목수 이야기다. 그 힘든 목수의 길로 들어서 숭례문, 수원 화성, 경복궁, 창덕궁 등 우리의 대표적 건축 문화재를 복원해 온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감동적으로 펼쳐져 있다.
그는 거친 손으로 그 엄청난 나무 기둥을 땅에 꽂고 그 기둥에 날개를 단다. 하늘로 차고 날 듯 뜨는 처마를 만든다. 그 위에 아름다운 용마루를 앉히는 것이다. 그것, 즉 수직 수평선만이 아닌 그 오묘한 허공선을 만드는 일은 어떤 예술가, 과학자의 작업보다 어려운 일이다. 컴퓨터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작업이다. 그의 눈과 손이 아름다운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서양건축물도 우리 고건축과 아름다움에 견줄 수 없다. 중국의 과장선, 일본의 억제선보다 더 자유로운 우리 한옥의 자연선(自然線)을….
파리 루브르 궁전의 기둥에 몸을 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거기에는 진회색 하늘뿐이다. 서울의 경복궁 근정전 기둥에 몸을 대고 하늘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처마가 푸른 하늘을 날고 있다. 그것은 신응수가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모른다. 궁궐 도편수를 모른다.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답이 이 책에 있다. 한국의 건축을 사랑한다면 다시 한번 뽑아 보길 권한다.
김정동 목원대 교수 한국건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