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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김기현]한반도 몰려오는 ‘러-中-印 삼각파도’

입력 | 2005-10-03 02:59:00


올해 8월 러시아와 중국이 사상 처음으로 연합군사훈련을 가진 데 이어 이달 중순에는 러시아와 인도가 2년여 만에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인드로(indro) 2005’라는 이름 의 이 훈련에 참가할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함정 5척과 핵잠수함 1척이 지난주 인도양으로 떠났다.

이번 두 나라의 연합훈련은 8월의 러-중 훈련 때와 닮은 점이 많다. 러시아 참가 병력이 태평양함대와 76공정사단인 것도 그렇고 훈련 시나리오도 비슷하다. 가상의 지역이 ‘국제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점령되자 양국군이 해상을 봉쇄하고 공정대를 투입해 진압하는 것으로 설정돼 있다.

내년에는 러시아와 중국, 인도가 모두 참가하는 군사훈련이 있을 전망이다. 세 나라 수뇌부는 이러한 군사협력 강화가 미국을 겨냥한 삼각동맹의 본격화가 아니냐는 분석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은 세 나라의 움직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세 나라의 협력 범위가 군사 분야를 넘어 에너지 협력, 국제 현안 개입 등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이들 3국 외무장관은 이란 핵문제 해결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다.

러-중-인 삼각동맹 구상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일방적인 국제질서가 계속되는 데 불만을 느껴 온 세 나라는 그동안 물밑에서 차근차근 준비해 온 것이다. 1998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당시 러시아 외무장관이 삼각동맹 구상을 처음으로 내놨을 때만 해도 “세 나라가 힘을 모아도 미국에 대항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적인 견해가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인도와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에너지 대국’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로 삼각동맹의 ‘파괴력’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러-중-인 삼각동맹의 부상이 동북아 지역이나 한반도 정세와는 무관한 것일까? 삼각동맹의 가능성이 구체화된 6월의 3국 외무장관 회담이 모스크바나 베이징, 뉴델리가 아닌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렸던 것은 상징적이다.

러시아 동시베리아 송유관 노선은 일본의 총력전에도 불구하고 결국 중국에 유리하게 결정됐다. 사할린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인도는 극동 지역의 대(對)러시아 에너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각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 정권의 붕괴가 남북한의 완전한 통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견해가 확산되고 있다. 북한 정권이 갑작스레 붕괴하거나 북한에서 내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경우 중국군이 진주해 일부 지역을 장기 점령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는 새삼스러운 내용도 아니다.

러-중 연합훈련이 진행될 당시 이 훈련이 대만을 겨냥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상당수 러시아 전문가들은 “중국의 ‘내부 문제’인 대만 사태에 러시아가 개입할 이유가 없는데 대만을 염두에 두고 훈련을 벌였다고는 보기 어렵다”며 고개를 저었다. 반면 안보 전문가인 드미트리 예브스타피예프 박사는 “러-중 군사훈련은 양국군이 한반도에서 벌여야 할지도 모를 ‘평화 유지 활동’을 연습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유사시’에 러시아와 중국의 공정대가 평양에 투입되고 양국군이 평양 인근 서해안으로 상륙하는 그림이 문득 떠오른다. 6자회담에서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는 여전히 가변적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한반도의 정세 불안에 군사적으로 대비하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한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내년 1월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각동맹 강화에 위기를 느낀 미-일 동맹의 반격인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두 세력이 격돌하는 무대가 한반도가 되는 것은 아닐까? 차마 떠올리기도 두려운 가정이다.

김기현 모스크바 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