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오랜 국정 경험과 연륜을 가진 신하들을 진두지휘하면서 30여 년간 개혁정책을 추진했다. ‘천년의 리더십, CEO 세종’에서는 그가 발휘한 국가 경영 리더십의 요체를 짚어본다. 사진 제공 MBC
세종 4년(1422년) 1월 1일 임금과 대신들이 창덕궁 인정전에 모였다. 개기일식을 관측하기 위해서였다. 예정 시각이 됐지만 하늘은 마냥 환했다. 달이 태양을 가린 것은 15분이나 지난 뒤였다. 조선왕조실록의 내용이다.
조선의 개기일식 시각을 중국에서 만든 역법으로 추정하니 이런 차이가 나온 것이다. 매우 영리하면서도 자주적이었던 세종은 중국의 것이 아닌 조선만의 기준을 잡아 나가기로 했다. 우리 현실에 맞춰 법률을 정비하고 우리 음악인 정악의 체계를 다듬었다. 결정판은 우리 문자 ‘훈민정음’이었다.
MBC가 한글날 특집 다큐멘터리 ‘천년의 리더십, CEO 세종’(9일 오후 1시 10분)을 방영한다. 조선의 최고경영자(CEO) 세종대왕의 경영 철학과 기법을 분석한다는 취지다.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삽입한 재연장면에서는 뮤지컬 배우 김장섭(36)이 세종대왕 역을 맡고 30여 명이 등장인물로 동원되는 등 탄탄한 형식을 갖췄다.
세종은 집권 중반기 의정부에 권한을 대폭 이양한다. 당뇨로 몸을 추스르기 어렵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장, 이동준 태동고전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왕권을 포기할 정도로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실제로 권한을 넘겨준 뒤에도 임금은 14년을 더 살았다. 그 시간에 임금이 매진한 일은 한글 창제였다. ‘히트작’을 생산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임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인 경영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1443년 조세개혁을 추진하던 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땅을 소유한 공신들이 세금이 많이 나올 것을 우려해서다. 위기에 처한 CEO 세종이 낸 아이디어는 ‘여론조사’. 17만 호(약 100만 명)에 걸쳐 의견을 물었고 결과는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사익을 추구하는 임원들에게 소비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1년부터 한글날 기념 프로그램을 만들어온 MBC 최재혁 아나운서가 기획한 것이다. 최 아나운서는 “조선의 CEO로서 세종대왕이 발휘한 추진력과 경영 기술이 오늘날에도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