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992년 4월 흑인 폭동이 일어났을 때다. 한국 교민들이 엉뚱하게 곤욕을 치렀다. 가게는 약탈당했으며 한인들은 총격을 받았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한인들의 억울한 사연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그 원인에 대해 재미 원로 언론인 이경원 선생은 “머리 좋은 우리 자녀들을 의사, 변호사 만드는 데 바빴지 글 쓰는 직업에 진출시키지 않은 탓”이라고 진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에 미국의 주류 언론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기자는 거의 없었다. 입김이 센 작가나 저술가도 보이지 않았다. 재미 한국인의 목소리는 변방을 맴돌 수밖에 없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오마에 겐이치 박사. 이들의 활약상이 부럽다. 일본계 미국인인 후쿠야마 박사는 정치철학 분야의 베스트셀러 몇 권을 써 명성을 얻었다. 저술, 강연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한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일본계 성씨(姓氏)가 돋보여 일본을 홍보한다.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박사는 영어, 일본어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집필하는 재사(才士)다. 이들의 능력은 과대평가된 측면이 있으나 일단 유명하니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새 저서를 낼 때마다 주목 받고 이 때문에 더욱 이름을 날리는 선(善)순환의 혜택을 누린다.
최근 미국 ‘포린 폴리시’와 영국 ‘프로스펙트’란 잡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적 지식인 100명을 선정했다. 10일까지 인터넷 투표로 ‘톱 10’을 뽑기도 한단다. 그러나 명단에 한국인은 1명도 없다. 후쿠야마, 오마에 박사는 보이는데….
칼럼니스트와 저술가로 맹활약하는 토머스 프리드먼 씨, 칼럼 집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교수도 눈에 띈다. 현존하는 석학인 위르겐 하버마스, 새뮤얼 헌팅턴, 장 보드리야르, 움베르토 에코 씨 등은 당연히 뽑혔다.
미국, 영국 잡지가 주관하는 행사이니 영미권의 견해가 중시됐으리라. 그래도 제3세계 지식인들의 이름도 꽤 보여 한국인이 전무(全無)한 사실이 안타깝다. ‘그들만의 잔치’라 애써 외면할 게 아니라 한국 지식인의 국제적 위상을 올리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100명의 면면을 보니 대부분이 문장가(文章家)다. 남을 감동시키는 글을 쓴 학자, 저술가, 작가, 칼럼니스트가 그들이다. ‘글의 힘’을 절감한다.
그런 면에서 세계 언어가 되다시피 한 영어에 능통하지 못한 한국 지식인은 불리하다. 영어로 글을 쓰면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기가 훨씬 유리한 게 엄연한 현실이다.
언어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편협한 시각, 명료한 논리력의 미흡, 기백 부족 등 본질적 요인들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의 여러 지식인은 여전히 민족주의나 좌우 대립 이데올로기에 갇혀 세계인들에게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또 자신의 논리를 깔끔한 글로 정리하는 솜씨도 모자라는 편이다. 세계 무대에 ‘나의 목소리’를 알리겠다는 야심과 기백도 부족하다. 한반도 안에서 아옹다옹하는 협량(狹量)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적잖은 청장년 작가들은 사소설(私小說) 쓰기 수준에 머물러 상상력의 날개를 활짝 펼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지식인은 ‘안방 챔피언’에서 벗어나야 한다. 세계를 향해 한국의 목소리를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한국이 수출 강국임은 물론 고유한 정신문화도 갖춘 나라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 한국인의 견해가 세계 질서 형성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주변국일 수는 없지 않은가.
재미 한국계 작가 이창래 교수와 수키 김 씨가 미국 문단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다. ‘100명 지식인’에 한국인 서너 명이 포함될 날을 갈망한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