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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69년 美골프선수 헤이건 사망

입력 | 2005-10-05 03:05:00


“월터 헤이건은 현재의 프로 골프를 만드는 데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다. 프로 골퍼들은 거액을 만질 때마다 마음속으로 그에게 감사해야 한다.”(골프 선수 진 사라젠)

1969년 10월 5일 숨진 미국 골프선수 월터 헤이건은 골프 역사상 최초의 슈퍼스타였다. 그는 세계 4대 메이저대회 11승으로 잭 니클로스(18승)에 이어 두 번째인 메이저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프로 골퍼다. 하지만 헤이건을 유명하게 만든 건 그가 ‘그린의 2등 시민’이던 프로 골퍼의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야구선수였던 헤이건이 골프로 전향한 1910년대 후반만 해도 프로 골퍼는 열등한 대우를 받던 직업이었다. 컨트리클럽과 주요 경기는 ‘아마추어 신사’용이었다. 영국에서는 차별이 특히 심해 프로 골퍼는 클럽하우스 정문으로 입장할 수도, 라커룸을 쓸 수도 없었다.

그러나 명예보다는 돈을 사랑한 헤이건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옷을 가득 실은 리무진을 골프장 앞에 세워두고 개인 라커룸으로 썼다. 1922년 그가 미국 선수 중 처음으로 브리티시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프로 골퍼에 대한 냉대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 그는 골프 사상 첫 투어 프로로 전 세계를 돌며 골프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대회 기간 내내 파티를 열고 방탕한 생활로 매스컴에 오르내린 것도 그가 ‘스포츠 스타’가 되는 데 한몫했다.

헤이건은 빼어난 퍼팅 실력뿐 아니라 쇼맨십으로 골프 관전의 재미를 선사했다.

골프선수 바이런 넬슨은 그에 대해 “정말 어려운 샷은 그냥 플레이하지만 까다로워 보여도 실제로는 쉬운 샷을 만나면 그의 쇼맨십이 발동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빙글빙글 돌며 한참 뜸을 들여 관중으로 하여금 ‘어렵겠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뒤 멋지게 처리해내 환호를 받는다는 것.

헤이건은 현재에 집중하는 정신적 전략 역시 누구보다 강인한 선수였다. 달인과 같은 그의 다음 말도 과거에 대한 후회나 앞일에 대한 걱정 대신 현재에 집중할 줄 아는 정신적 근력에서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왔을 뿐이다. 그러니 서두르지 말고 걱정하지 말라. 길에 멈춰 서서 꽃향기를 맡아보자.”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