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대법원에서 4명의 국회의원에 대한 판결 선고가 있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소속 의원 3명은 유죄판결에 대한 파기환송 또는 무죄확정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하였으나, 민주노동당 소속 조승수 의원의 경우 사전선거운동에 대해 하급심이 선고한 벌금 150만 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되어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재판의 당사자가 판결에 대하여 아쉬움을 갖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아쉬움 표명의 수준을 넘어 “대법원이 금품을 살포한 다른 의원에게는 그 직을 유지하도록 한 반면, 조 의원에 대해서만 의원직 박탈형을 선고한 것은 ‘상식과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소수당에 대한 사법적 탄압”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대법원을 성토하고 있다.
이는 우리 사법제도와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먼저 형평성 논란을 보자. 대법원이 같은 날 다른 당 의원의 선거법 위반사건에 대해 내린 판결은 “원심에서 유죄로 인정한 여러 공소 사실 중 ‘금품 제공 행위에 국회의원이 가담하였다는 부분’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이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 사실만으로 하급심에서 다시 형을 정하라”는 취지로 ‘위법성 정도’에 대하여 판단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범행을 저지른 것이 명백하고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 경우라도 기소된 피고인이 바로 그 범인이라고 단정할 증거가 없다면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법원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므로 증거 부족으로 인해 유죄로 인정되지 않은 사안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제해 놓고 ‘형평성’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음으로 형량에 관해서 보자. 형사소송법 제383조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대해서만 대법원에서 형량이 적정한지를 심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심인 대법원이 모든 형사사건의 형량을 다시 저울질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 상고심제도를 가진 나라는 이와 유사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미 하급심에서 의원직 상실의 효과가 발생하는 벌금 150만 원을 선고받은 조 의원의 경우, 그 유죄 인정에 법리적 잘못이 없는 이상 대법원에서는 형량이 적정한지 를 판단하는 것이 법률적으로 금지돼 있다. 거기에 어떤 정치적 고려가 끼어들 여지는 없는 것이다.
법원의 판결에 만족하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판결의 취지를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법원이 본연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가 필수이다. 사법부의 판단에 대한 부당한 비난이 여과 없이 국민에게 전달됨으로써 사법 불신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는 법치국가의 근간이 훼손되는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으며 그 궁극적인 피해자는 국민이다.
김시철 대전지법 홍성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