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곁에 두고 무심코 손 뻗어 아무데고 읽기 시작해도 곧바로 빠져드는, 드물어 더욱 소중한 책 중의 하나가 명천(鳴川) 이문구(1941∼2003) 선생의 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본 게 막 습작을 시작하던 20대 후반이었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어디에서 어디만큼 울타리를 치고 어떤 괭이로 땅을 갈고 거름은 무엇으로 쓰고 무슨 씨를 뿌리고 어떻게 가꾸어야 하는지 한 가지도 알 수 없었을 때였다. 그때 관촌수필의 이런 대목이 눈에 쑥 들어왔다.
“그래 너는 몇 살이나 되었다더냐. 그러자 그녀는 아무 어렴성 없이 아는 대로 대꾸했다. 지 에미가 그러는디 제년이 작년까장은 제우 여섯 살이었대유. 그런디 시방은 잘 몰르겄유. 늬가 늬 나이를 모른다 허느냐. 예, 어떤 이는 하나 늘어서 일곱 살이라구 허던디 또 누구는 하나 먹었응께 다섯살이라구 허거던유. 페엥- 그래 늬 에민가 작것인가는 요새두 더러 보이더냐. 접때 달밭 대감댁(외가)에 왔는디 봉께, 유똥치마를 입구, 머리는 힛사시까미를 허구, 근사헌 우데마끼두 차구……여간 하이카라가 아니던디유. 그래 그것은 시방두 장(늘) 술고래라더냐? 그리기 접때두 취해서 7 애비허구 다투다가 고쟁이 바람으루 8겨났었유. 페엥- 숭헌…….”
일곱 살짜리 옹점이가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말 나누는 장면이다. 나는 웃다가 멍해졌고 급기야 무릎을 치게 됐다. 소설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소설 속의 인물이 이런 것이구나.
어디 이 대목뿐이겠는가. 전쟁의 비극, 공동체의 따뜻한 인간애와 몰락, ‘개죽음 당하고 싶지 않아서 소설가가 되었다’고 밝힌 대로, 가족의 독한 비극, 산업화의 과정과 파괴의 현실 등이 ‘관촌수필’ 연작 첫 편인 ‘일락서산’에서 끝 편인 ‘월곡후야’까지 빼어나게 형상화되어 있다.
공동체나 토속, 농촌, 이런 수식이 붙으면 들었던 책도 슬그머니 놓아버리는 게 요즘 독자들인 데다가 이미 이 책에 대하여 숱한 평론가들의 찬사가 있었고 문학사적 의의 또한 검증 정리되었기에 자꾸 되풀이할 필요는 없겠다. 선생이 구사했던 아름다운 우리말 또한 이문구 소설어 사전(민충환 엮음·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2001)이 이미 나와 있어 일일이 늘여놓지 않아도 될 듯하다.
흔히 능청, 해학으로 이름 붙여진 선생의 문체는 독보적이다. 끊어질 듯하면서도 구불구불 다음 호흡으로 이어지고 출렁출렁 흘러 마침내 삶을 보듬어 내는, 그러면서도 과함이 전혀 없는 만연체에서 나는 매정하게 돌아서지 못하는 작가의 따스한 심성을 읽는다. 때문에 무릇 살아 있다면 어떤 마음을 지녀야 되는가를 배웠다.
도처에 풍부한 비유와 익살의 말(言語)도 백미다. 언젠가 술집에서 안주 시키라는 주인에게 ‘몸속에 허파 있고 간도 있고 곱창도 있는데 뭐 하러 안주를 먹어요. 술만 넣어주면 되지’ 해서 웃었는데 모두 선생의 소설에서 읽은 것이다.
함부로 사람을 대하지 않는 예의와 독재정권의 탄압에 한 번도 등 돌리지 않았던 의식, 기승전결 운운의 수입 이론을 ‘장마철 물걸레 보듯’ 하고 소설이 진정 뭔가를 보여준 작가정신이 이 책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다. 이런 책이 또 나올까.
한창훈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