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비싼 화장품’으로 불리는 초고가 제품들. 변영욱 기자
《여성들에게 ‘비싼 화장품’에 대해 묻는다면 시슬리의 ‘시슬리아 크림’(35만 원)이나 드 라메르의 ‘크렘 드 라메르’(26만 원) 등으로 대답할 것이다.
이들은 각 브랜드 매출 순위에서 수위를 차지하는 제품들이다.
그러나 ‘쿠튀르 화장품’의 세계에서 이 정도는 비싼 편이 아니다.
쿠튀르 화장품은 고급 맞춤복을 뜻하는 ‘오트 쿠튀르’처럼 최고급 천연 원료와 첨단 기능성 성분을 함유해 소량 생산하는 제품이다.
국내에서 시판되는 화장품 중 단일 품목으로 가장 비싼 것은 스위스 퍼펙션의 ‘리쥬베네이션 마스크’로 15번 사용할 수 있는 세트가 300만 원이다.
이 브랜드에서 운영하는 피부관리 숍인 ‘뷰티 메드’의 1년 회원권은 2000만 원이다.
이 외에도 최근 많은 브랜드가 초고가 화장품을 내놓고 있다.
이런 화장품도 어차피 바르면 없어지는 소모품이다.
그럼에도 명품 브랜드 가방에 못지않게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
○ 크림은 100만 원, 향수는 252만 원
스위스 브랜드 라프레리는 2000유로, 약 252만 원에 이르는 향수 ‘실버레인 쿠튀르’를 선보였다. 국내에 정식 수입은 되지 않지만 주문을 하면 구할 수 있다.
15mL의 향수 원액 세 병이 물방울 모양의 순은 케이스에 들어 있다. 라프레리의 한 관계자는 “수백 kg의 희귀한 꽃잎을 원료로 한 명품인 데다 병도 예술 작품”이라며 “사용자보다 수집가를 위한 소장품”이라고 밝혔다.
샤넬이 지난달 출시한 ‘마이크로 솔루션’은 박피나 보톡스와 같은 피부과 시술을 집에서 할 수 있다는 노화 방지 제품. 홈 필링 프로그램 등 세 가지 세트가 82만5000원이다. 샤넬 측은 “성분에 포함된 희귀한 식물 추출물은 1t에서 겨우 1kg의 원액을 얻을 수 있으며 피부 흡수율을 높이는 실험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다”고 밝혔다.
에스티 로더는 이달부터 ‘리뉴트리브 리크리에이션 데이 앤드 나이트 크림’ 세트(50mL 2개)를 100만 원에 출시했다. 셀레늄 등 74가지 무기질에 하와이 부근 2000피트 지하의 심해수를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2002년 출시 당시 ‘순금보다 비싼 화장품’으로 화제가 됐던 코스메 데코르떼의 ‘AQ 크림 밀리오리티’는 45mL에 108만 원이지만 매월 20∼30여 개가 꾸준히 팔리며 일본에서는 연간 1만 개가 나간다. ’원가가 너무 비싸 샘플도 없다’는 미국 브랜드 보타닉 랩은 데이 크림 68만 원, 나이트 크림 72만 원으로 기초 7종 세트를 모두 구입하면 323만 원. 이 제품들도 2003년 국내 출시 이후 마니아들이 늘고 있다.
○ 아는 사람만 안다
상류층을 향한 제품들은 광고보다 입소문의 효과가 크다. 초고가 화장품 업체들도 광고 없이 VIP에게만 안내문을 보낸다. 백화점에서 팔지 않고 예약을 통해서만 주문받기도 한다.
스위스 퍼펙션은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에만 매장이 있다. 에스티 로더는 전국에 54개 매장이 있지만 이번에 출시되는 100만 원짜리 크림은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신세계백화점 본점 등 5곳에서만 판다. 예상 구매 고객을 차별화한다는 전략이며 제품 설명회도 소규모로 멤버십 잡지의 편집장이나 연예인, 여성 사업가들만 모아 놓고 열었다.
웬만한 이들의 한 달 월급과 맞먹는 가격의 화장품이 얼마나 팔릴까. 뷰티 업계 관계자들은 고가 화장품일수록 판매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나왔던 27만 원의 에스티 로더 ‘리뉴트리브 인텐시브 리프팅 크림’만 해도 당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광고나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모두 다 나갔다. 샤넬의 마이크로 솔루션은 초기 물량이 출시 전에 품절돼 정작 출시일에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라프레리의 캐비아 라인도 출시 전 VIP 예약을 통해 제품이 품절됐으며 로션 치고는 드물게 30만 원이 넘는 시슬리의 ‘올데이 올이어’는 출시 보름 전에 예약만 2000개를 넘었다.
○ 비싼 만큼 좋을까?
스위스 퍼펙션의 홍성애 대리는 “상류층이 많이 찾지만 반드시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피부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고객”이라며 “기업가(家)의 여성과 전문직 여성, 연예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샤넬 본사의 마리 엘렌 레르 과학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화장품과 의학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며 “소비자가 화장품을 ‘병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없이 피부관리를 할 수 있는 대체품’으로 간주하면서 초고가 화장품 시장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입품인 초고가 화장품의 가격에는 관세 등 이 포함돼 있으며 이는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관세청에 따르면 수입 화장품은 도착 가격에 8%의 관세, 다시 10%의 부가세가 붙는다. 도착 가격이 1000달러(약 104만 원)일 경우 관세가 붙으면 112만3200원, 부가세가 붙으면 123만5520원이다. 여기에 창고료 운송료 등 수수료와 수입업자의 이윤이 포함돼 소비자 가격을 이룬다.
100배 비싼 화장품이 과연 100배의 효과를 가져다 주느냐도 의문이다. 퓨어 피부과 정혜신 원장은 “직업상의 이유로 몇천 원에서 100만 원이 넘는 것까지 수많은 화장품을 써 봤는데 비싼 제품이 느낌이나 흡수성 등이 좋긴 하다”며 “그러나 화장품은 자기한테 맞는지가 가장 중요하므로 아무리 고가여도 자기 피부에 안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